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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May 30. 2023

절에 간 사모님

오리엔탈 크리스마스니깐

직지사를 좋아한다. 대학생 땐가 고등학생 때 어느 겨울날 아빠랑 언니랑 절 안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는데, 무슨 차를 마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로 위 그릇 올려 구운 절편이랑 꿀을 얻어먹은 게 정말 정말 맛있어서 이십 년이 다 되도록 겨울마다 얘기했었다.


눈 내린 겨울 직지사는 고즈넉하여 산책하기 딱 좋았고 난로 피운 카페 안의 공기도, 주문한 차도 아마 따뜻했을 것이며 공짜로 얻어먹은 꿀 묻힌 절편은 달달하고 쫀득하니 여태 먹어 본 절편 중 가장 맛있었다. 우연히 산책하러 들렀는데 뜻밖의 디저트 때문에 행복했던 그날은 내가 “희사(喜捨)“라는 아주 예쁜 단어를 배운 날이기도 하다. (아무 후회 없이 기쁜 마음으로 재물을 내놓는 일을 뜻한다.)


초파일 당일 아이들과 직지사에 가 볼 생각을 한 것도 그래서였다. 직지사에는 좋은 기억만 있으니까. 그리고 외국 성당만 많이 가 봤지, 우리나라 절에 가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절을 보여 주고도 싶었다. 무릇 한국인이라면 불교문화를 아는 교양 정도는 필요하니까.


어영부영 오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출발했더니 제법 발 디딜 틈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천왕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았고, 다행히 귀차니즘에 걸린 무지렁이 엄마도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도 몇 개 있었다.


50센트, 1유로 내고 촛불에 불붙여서 기도하잖아, 그거랑 저거 촛불 켜는 거랑 비슷한 거야.

마리아랑 예수님상 있잖아, 그거처럼 부처님상도 있는 거야, 다른 말로는 불상이라고 불러.

저기 구멍에다가도 헌금하는 것처럼 돈을 넣는 거야,


아이들에게 굳이 어느 똑똑한 사람의 말을 빌려 불교는 원형적 종교라느니, 기독교는 직선적 종교라느니 하는 어려운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나중에 커서 기회가 있다면 그때 배우면 된다. 그저 지금 우리 사는 세상에는 이런 건축물이 있고, 이런 문화가 있고, 이런 기념일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이젠 사모님도 뭣도 아니지만, 애초에 그게 직업이거나 학력이거나 학벌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아직도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 제목에 써 보았다.

단청을 두른 듯한 칼라감이 아주 멋짐.


화요일에 걸린 월요병 때문에 또 글 하나 쓰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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