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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16. 2022

고쳐 쓸 수 없는 마음을 수습해야 할 때

잘 지냈냐고 물으시면 잘 모르겠어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남편

고쳐 쓸 수도 없는 마음을 수습해야 할 때고쳐 쓸 수도 없는 마음을 수습해야 할 때

“안녕하세요오오오.”

“잘 지내셨어요? 좀 어떠셨어요?”


또 늘 하던 질문.


“그냥, 비슷하게 지냈어요.”

“이전보다는 뭐 불안감이나 짜증 나는 건 덜한 상태구요? 잠도 그럭저럭 자는 거구요.”

“네. 약 먹기 전에 비하면요.”


어디까지나 약 먹기 전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지,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고 선생님도 그걸 알아보셨다.


“아직은 뭔가 계속 힘든 게 있으신 거 같은데.”

“네. 계속 얼굴을 보고 지내게 되는 구조라서.”

“계속 그런 상황이라서-”

“일단은요.”


그리고 또 물으셨다.


“부딪히진 않으세요? 싸운다거나?”

“네.”

“약간 뭐랄까, 거리를 두고 지내서?”

“그렇기도 하고요. 남편이 일방적으로 그동안 하지 않던 집안일과 육아 등을 요즘 하고 있어요. 이혼 얘기 한 후로 더. 근데 자기 할 일을 잘 안 하는 거 같아서 저는 그게 답답하구요.”

“자기 할 일을 안 한다니요?”


그러니까 남편의 할 일이라는 게 뭔지 선생님께서 아셔야 했다.


“남편이 논문을 써야 되거든요, 남편이 학업을 해야 해서요.”

“그런데 그 일을 안 하고.”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아직도 잘. 살면서 제일 힘든 게,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남편이 자기 학업에 늘 너무 몰두해서 제가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도 함께해 보려고 하면 항상 그럼 자기 공부 망하라는 거냐, 성과를 내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고, 제가 잠깐 애들이랑 산책 한 번 같이 나가고 싶어 하면 늘 자기는 그거 못 한다고 선을 그었거든요. 그게 자기 학업을 말아먹는다고.”


나는 왜 그러고 살았을까. 현타는 늘 예고도 없이 온다.


“남편분이 학업에만 집중하고 가정에는 그냥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네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남편이 극혐하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신경을 썼다고 말할 테니까, 아니면 신경을 쓰면 공부가 망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테니까. 그래도 선생님한테는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제는 남편 눈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남편은 애초에 한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고, 그것이 잘 안 잡히자 다른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 토끼는 떠났다.

“네. 너무나요. 자신은 구조적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자기가 그런 사람인 걸 어쩌라는 거냐고. 화를 내면서. 억울하다는 듯이요.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말했고, 제가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어요. 그래서 늘 그걸 제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요. 수용을 하고 또 하다 보니 그게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하는 걸 제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다 필요 없으니 본인 할 일이라도 제대로 마무리하라고 말했고요.”



“왜 이제 와서 그러냐…”

“그렇죠. 두 마리 토끼 같은 거 잡을 수 없으니 그거라도 잘해라 하고요. 그래야 애비 노릇이라도 하지 않을까. 제 마음은 끝난 거 같아서요.



내 마음이 끝났다는 걸 깨닫기 위해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괴로워야만 했다.


“남편분 말에 의하면, 자신은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가사나 육아를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러면 지금 가사와 육아를 한다는 건 학업을 안 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점점 더 답답해요. 병원을 찾게 된 이유 중엔 그것도 지분이 커요. 근데 못 알아듣더라고요. 참 못 알아듣더라고요. 여러 번 말했는데도 제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어쩌면 병원에 와야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사람인지 몰라요. 진단과 처방이 더 시급한 사람이요.


진심이었다. 그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다. 짠하고 안타까울 만큼 말이다.  


“이제 와서 지금 토끼를 잡겠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구요. 그런데 육아나 가사도 언제까지 계속할지도 모르는 상태고. 학업도 그렇고.”

“맞아요. 그게 힘들어요. 너무 오래 그렇게 지냈어요. 첫째가 지금 아홉 살인데, 첫째 임신 때부터 지나치게 그랬거든요.”

고쳐 쓸 수도 없는 누더기. 그의 마음도 지금쯤이면 그때의 내 마음처럼 이런 모양일까.




“지금 마음은 좀 어떠세요 그러면?”


내 마음이 어떠냐고? 진작에 고쳐 쓸 수도 없을 만큼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었지.



“일정 부분 완전히 선이 그어지니까. 남편 보면 답답하고 화나는 게 예전에는 때때로 해일 같았다면 지금은 그냥 졸졸 시냇물 같아요. 지하 암반수처럼. 소송은 안 할 건데, 이혼 마음은 안 변할 거예요. 변호사님도 많이 미루지 말라고,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셔서. 그냥 둘째가 남자앤데 아직 어리니까, 걔가 혼자 똥 닦을 수 있게 될 때까지만요. 수영장에서 혼자 옷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로만요.”


“네, 알겠습니다. 약은 원래 더 세게 드시는 게 맞아요. 그렇게 할까요?”

“그래도 될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이렇게 먹어도 괜찮으면 그렇게 해도 될까요? 제가 새로 하려는 게 있는데 흐리멍덩해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네, 그럼 이렇게 드시고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아.”




다시 보니 마음이 또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덤덤해지겠지. 그러면 나는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망하는 유학생활 백서>도 써 볼까. 나처럼 슬픈 사람은 없으면 좋겠으니까.


어제 저녁에는 둘째가 혼자 똥을 닦았다. 하나도 안 묻는 똥이라고 혼자 잘 닦고 나왔다고 하길래 따로 똥꼬 검사를 하지도 않았다.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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