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도 셀프 처방을 했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힘들지만 ㅅㄹ를 하면 더 힘들어

by 김도비


"좀 어떠셨어요?"


언제나처럼 선생님이 물었고, 나는 빙긋이 웃으며 잘 지냈다고 답했다. 새로 추가된 약에는 일주일 정도 걸려 적응했고, 잠도 잘 잔다고.


“갑자기 눈물 나거나 하는 일은 없으셨구요?”

“네, 지난 3주 동안은 없었어요. 기분 안정제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PMS랑 생리만 아니면 지내기 한결 괜찮을 것 같아요. 아, 선생님, 프리페민정*이라고 있는 거 아세요?"

(*생리전증후군의 각종 증상 개선을 위한 약)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일반의약품이라 약국에서 살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알고 계셨구나, 나는 얼마 전에서야 그런 게 있는 줄 알았다고 얘기한 뒤 지금 내가 먹는 약이랑 같이 먹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선생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여쭙고 먹어야 할 것 같아서요. 기분이 멜랑멜랑해져서 달력 보면 꼭 날짜가 임박한 상황이라. 괜찮다가 어제 또 오랜만에 화가 많이 났어요.”


왜 화가 났냐셔서 운전하는데 애들이 뒤에서 싸우고 때리길래 엄청 화냈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뜻밖의 공감이 돌아왔다.


“애들이 싸우면 화가 나는 게 정상이에요.”


선생님도 아이가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대신 다른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는 언제쯤에 약을 줄일 수 있을까요? 애들 커서 사춘기 되면 더 심해지진 않을까요?"


그러자 선생님이 마우스를 스크롤하다 말고 말했다.


“사춘기이—가 힘들긴 하죠. 지금 제 아이들이 사춘기인데, 크니까 어느 정도 포기되는 부분도 생겨서 오히려 나아요.”


그 대답을 듣고서 이번에는 참지 않고 물었다. 선생님은 약을 드신 적 있느냐고. 그랬더니 선생님 왈,


애들 어릴 때는 저도 힘들어서 약을 먹었어요.

볼 때마다 참하고 차분하셨던 선생님도 육아가 힘드셨다니!


생리 호르몬의 노비 따위 되어 본 적 없는 선생님도 애들 어릴 때는 약의 도움을 받았다는 슬픈 고백을 듣고서 어쩌서인지 으흐흐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얼른 수습을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도 그렇게 힘드셨다고 하니 뭔가 위로가 되네요. 제가 영 형편없는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선생님도 웃으셨다. 마스크 벗은 선생님께 진료받기는 처음이었는데 표정이 잘 보여서 좋았다. 우리는 다음 진료일을 원래보다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상태가 나빠져서는 아니고, 이제 슬슬 휴가철이니까. 아이들도 나도 잘 쉬고 회복하려면 속절없이 생리에 당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지.


글을 쓰다 보니 다음에는 프리페민정을 먹으면서 안정제는 줄일 수 있을지 물어봐야겠다 싶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나. 백전오십승만 되어도 좋으니 짧은 생리 싸이클로부터 조금만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러면 아이들의 인생도 훨씬 더 평화롭고 순탄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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