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작당한 것도 없는데 동생 입단속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퇴근길에 저녁으로 가지밥 마저 먹을 거라고 공주한테 말했다가 짐작대로 원성을 샀다. 벌써 사흘째 저녁이 가지밥이라 반박할 수도 없어 뭐 먹고 싶은지 물었더니 초밥이라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랑 넷이 살 때도 종종 갔고, 그와 내가 단둘이 마지막 외식을 했던, 우리가 가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와사비를 다 빼 주는 그 단골 초밥집은 아이들이 늘 아주 행복해하는 곳이라서 음식 맛처럼이나 내 기분도 좋아지는 곳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행복 프로펠러를 돌리며 날아가는 모양새로 초밥집에 들어갔고, 왕자용 계란초밥 한 세트, 공주용 연어초밥 한 세트, 내 영혼의 단짝 회덮밥을 시켜 즐겁게 먹는 중이었다. 왕자가 다음에는 유부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계곡에 놀러갈 때 유부초밥을 해 주겠다 대답을 출력했다. 왕자가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이번 주말에 가는지를 묻자 공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신 대답했다.
"야, 이번 주말에는 아빠 만나잖아!"
그러자 왕자가 대꾸했다.
"아빠랑 같이 갈 수도 있잖아! 엄마, 아빠집에 갔다가 아빠랑 같이 계곡에 갈 거예요?"
전에도 쓴 적 있지만, 왕자는 청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가끔 볼륨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 아빠집 얘기를 꺼냈을 때도 그랬다. 신난 정도에 비례해서 목소리가 커지는 듯한데, 아빠랑 얘기해 봐야지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눈앞에 웃픈 광경이 펼쳐졌다. 공주가 무슨 모기라도 때려잡듯 왕자의 입을 손으로 급하게 틀어막은 것이다. 나를 향해 턱을 내밀고 입술을 코끝에 붙이며 짓던 몹시 곤란하다는 표정은 덤이었다.
아아, 어쩌다 저 아이가 이런 눈치도 보게 되었을까.
밖에서 아빠집 얘기 꺼내는 건 놀랍지도 않은데 이번에 느낀 한 가지 변화는 바로 공주의 반응. 둘이 작당한 것도 없는데 동생 입단속을 하는 공주의 낯선 모습에 애미는 맛있는 회덮밥을 먹다가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속으로만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책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오은영 박사님 유튜브에 가서 댓글이라도 남겨야 하나. 다음 상담 갈 때까지 숙제로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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