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Jul 08. 2023

1년 만에 다시 찾은 스타벅스

거길 또 가게 될 줄이야

언니가 스타벅스 프리퀀시 필요한 사람 있냐고 친정 단톡방에 물어왔다. 언제나 선물 받은 카드나 쿠폰 쓰러 매장에 가는 나는 스타벅스 앱에 들어가 프리퀀시라는 것의 존재를 확인했고, 말차 프라푸치노를 비롯한 음료를 제법 마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네이버 검색 후 프리퀀시를 다 모으면 받을 수 있다는 테이블이 갖고 싶어져서 저녁식사 후 아이들과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갔다. 지난여름 내가 싫어무새가 되었던 바로 그 스타벅스, 그 후로 다시는 가지 않은 그 스타벅스에를, 슬러쉬 먹으면서 만화책 보겠다고 잔뜩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갔다.


"엄마, 나는 이거 핑크색 먹을래."

"이거 키위야? 나는 키위 먹어 볼래!"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고심하더니 각자 메뉴를 결정한 아이들. 대기업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메뉴지만 애들한테는 문구점 슬러쉬랑 비슷한 신세인 피치 요거트 블렌디드와 라이트 라임 키위 블렌디드를 시켰다. 그럼 나는 무얼 시켰을까?


‘이 집에서 제일 독한 걸로 쥬세요.’


헛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멀쩡한 사람이어야 해서 얌전하고 평범하게 디카페인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공주랑 왕자가 시킨 메뉴.


동글동글한 테이블에 먼저 자리를 잡은 줄 알았더니, 서로 엄마 옆에 앉겠다며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던 아이들한테 테이블 하나씩 배정하여 싸움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약간의 소란 이후 아이들은 금세 책에 푹 빠졌는데 나는 그 스타벅스에를 다시 왔다는 생각에 좀처럼 책이 눈에 안 들어왔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핑크핑크한 피치 슬러쉬를 먹으며 책을 보던 공주가 갑자기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고, 웃음소리는 마치 유럽 겨울날의 따뜻한 햇볕처럼 내 머릿속 먹구름을 단숨에 걷어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읽으며 저렇게까지 웃을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찰나의 궁금증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메이플 스토리를 읽으며 키위 슬러쉬 밑에 깔린 젤리를 일일이 다 뱉어내는 왕자도 진상 같지 않았다. 지 애미 닮아 가리는 게 많은 저 아이를 어쩌겠나. 화가 나는 거의 모든 순간에, 유전자는 정말 강력하다는 깨달음이 있는 걸. 아빠를 닮은 모습보다 나를 닮은 모습에 더 화가 나니 욕을 할 수 없어 다행이고 말이다.


전에 어떤 독자님이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어도 돌아보면 그 덕에 힘을 내기도 했을 거랬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이혼을 거절했던 그의 모습과 고개를 가로저으며 싫어 싫어를 외쳤던 나의 외침으로 점철된 그 스타벅스에 공주의 웃음소리가 퍼졌다고 해서 다음에는 그 스타벅스를 더 즐겁게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곳은 여전히 방문이 내키지 않는 곳이다.


그래도 스타벅스에 사연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지도 않을 테고, 마지막 프리퀀시 하나도 거기에서 받아 볼까 싶다. 언젠가는 꼭 극복하겠어.



여담


도비는 어렸을 때 코코팜이랑 봉봉을 싫어했고, 다 커서도 공차에 가면 타피오카 펄을 최소로 줄여서 먹었다. 문디손 왕자가 키위 슬러쉬 바닥에 깔린 곤약젤리를 하나하나 뱉으며 먹은 건 입맛이 나를 닮아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나 몇 등 하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