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몇 등 같은 건 상관없는데…
내일 체육대회를 한다고 어제 입은 학교 체육복을 꼭 빨아달라며 신신당부하던 공주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는 나 몇 등 하면 좋겠어?
글쎄. 공주가 몇 등을 하든 사실 아무 상관없다만, 무슨 종목을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상관없다고 말하면 너무 무심하게 들리려나.
"나는 뭐든 다 괜찮은데? 너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하면, 등수는 상관없어."
공주가 또 물어왔다.
"그래도 내가 몇 등 하면 좋겠어?"
퇴근하고 아이들과 저녁 챙겨 먹은 후 소파에 뻗은 채, 아직 돌리지 않은 세탁기와 돌리지 않은 식기세척기를 떠올리며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겨보려고 애쓰는 엄마에게 똑같은 질문 두 번이란 몹시 귀찮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순간이 왔다.
"몇 등을 해도 다 괜찮다고 생각해.
근데 너는 엄마 마음이 중요해? 너가 몇 등 하면 엄마가 좋을 것 같은지가 중요하니?"
거울을 보며 공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니, 말을 그렇게 안 들어서 속을 썩이더니 내 마음이 너한테 중요하다고?"
아까 감자 먹은 껍질이랑 과자 봉지 치우라고 세 번을 말해도 안 치워서 결국 내가 치운 게 생각이 난 바람에 급발진으로 한 방을 날리고 말았다. 하지만 공주는 절대 지지 않는다. 아홉 살과 열 살의 말대꾸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깨닫는 중인데, 오늘도 그랬다.
"아, 그때는 그럴 때고! 그럴 때도 있고, 마음속으로 엄마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 거지!"
고작 열 살 꼬마가 엄마보다 자기 마음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열받고 감동도 받았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공주에게 있었구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엄마와 공주는 요즘 반쯤 앙숙이 되어서 퇴근하고 오면 저녁마다 앙앙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밤이면 또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어 공주는 매일 자러 가기 전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의 양쪽 볼에 프랑스식 뽀뽀를 두 세트 하고서야 방에 들어간다. 그것이 우리 관계 회복을 도모하려는 공주만의 방법이고 표현이다. (때마다 귀찮고 고맙지만.)
공주의 솔직한 마음을 들으면서도 졸음을 참을 수 없어 눈을 감고 말했다.
"너가 뭐 갖고 논 거 정리하는 거나, 매일 약속한 공부랑 잘 준비를 먼저 마치고 테레비 보는 거, 그런 거는 엄마랑 정한 거니까 그거는 말을 들어야지. 근데 체육대회는 진짜 나는 공주가 몇 등을 하든 상관없어. 잘 해도 좋고, 잘 못 해도 괜찮아. 너가 체육대회 하는 동안 친구들이랑 신나게 잘 놀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그런 거까지 엄마를 신경 쓰면서 안 해도 괜찮아, 안 그럼 너가 너무 피곤해져."
다른 사람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피곤한가. 내가 잘 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주는 보람이 아주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도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그렇게 살지는 못했고 결국은 상당히 죄송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 아닌 자신을 조금 더 위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 될 것 같아 그러기를 빌었다.
엄마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공주는 대충 그래요, 하고만 대답하더니 이제 그만 누워 있고 일어나서 세탁기를 돌리라고 걱정 반, 채근 반, 또 당부를 했다. 따님 심부름 끝내놓고 이 밤에 식세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식탁에 앉아 쓰는 글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집요정의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