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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ug 02. 2023

이 하이볼이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평범한 대답은 하지 않아요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 한 번 가 보려고 했던 닭꼬치 집을 아빠집에 애들 보내놓고 갔다. 조용히 먹고 싶은 회덮밥 집이 휴무길래 너무 속상해서 혼자 닭꼬치 집에를 다 갔다. 나란 아줌마.


문 열어 주며 두 분이시냐며 묻는 직원에게 웃으며 혼자라고 말하고, 포장하시냐고 묻길래 웃으며 먹고 간다고 자리 잡고서 닭꼬치 하나, 염통 꼬치 한 세트를 시켰다. 그리고 음료.


마침 블랑 1664 생맥이 있어 (야호) 그걸 먹을까 하다가 하이볼도 있길래 사장님께 하이볼은 어떻게 나오는지 물었는데, 같이 있던 직원분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바 안으로 들어와 보라고 했다.


오잉???


따라 들어갔더니 짐빔, 임페리얼, 에반, 제임슨 등을 보여 주며 뭘로 해 드릴까 하고 나한테 묻는 게 아닌가.


- 갑자기 뭘 마실지 고르라니 나는 뭘 마시면 좋을까

- 근데 여기서 하나를 고르면 어떤 토닉워터나 에일이나 탄산수랑 섞을지도 내가 정할 수 있을까

- 뭐랑 뭐를 섞어 줄지도 물어보면 나는 즉시 대진상 고객이 되는 건 아닐까


2차 오잉???의 순간을 얼른 흘려보내고 뭐가 좋을지 되물었더니 직원분이 본인 잡수려고 갖다 놓은 17년산 임페리얼로 한 잔 해 주겠다길래 넵, 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너무나 녹기 좋게 생긴 얼음을 잔뜩 담아주셔서 3차 오잉???의 순간을 맞은 것과는 별개로, 야구 보며 닭꼬치를 즐겁게 먹는 중이었는데 음료 직원분이 오시더니 하이볼 좀 드시냐며, 자기가 그냥 기본적인 것 이것저것을 가져다 놓았는데 혹시 괜찮은 거 있으면 추천해 달라셨다.


- 이거는 이거랑 섞어서 먹으면 맛있고요

- 아니면 저런 거 저런 거랑 이거를 같이 섞으면 요런 맛이 나서 먹기 괜찮아요

- 그리고 저는 이거는 이렇게 하면 이런 점이 좋더라구요


라고 말하면 다시는 이 닭꼬치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 같았다. 자주 안 마셔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직원분이 그럼 지금 드시는 하이볼은 어떠세요? 하고 물으셨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 맛있어요

- 기교 싹 빼고 클래식하게 말으신 것 같아요

- 위스키를 아낌없이 넣어 주신 것 같은 맛이에요


그래서 과연 나의 대답은???



너무 빨리 줄어들어요.


직원분이랑 옆에 와 있던 사장님까지 세트로 빵 터지는 모습을 보고 '도라이 도토리 도, 비둘기 비'는 아주 흐뭇했다. 다음에는 애들 데리고 가서 3인 세트로 먹고 와야지.




여담


다인용 세트 메뉴에는 있지만 단품으로 시킬 수는 없는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받아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못해 아파와서 추가로 시킨 염통꼬치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슬슬 손님들이 들어오고 식당이 분주해지길래 포장을 부탁하는데, 지나가는 사장님과 아이컨택을 해 버렸다. 못 먹겠어서요 하고 변명했더니 짓궂은 사장님 왈,


맛이 없어서요?

되로 주고 말로 받을 뻔.

착하게 살자. 주접을 떨면 나에게 다 돌아온다.

 

식욕에 뽐뿌가 많이 오지 않도록 초점이 잘 나간 닭꼬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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