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비 Oct 14. 2023

실은 제가 애 딸린 이혼녀라서요.

싱글맘이라고 순화해서 말했다

커피 모임에 나갔다가 애 딸린 이혼녀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숨긴 후 자괴감에 놀라 탈퇴한 날,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원 찾기 기능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나왔는데 운영진에게는 누가 모임에서 나갔는지 뜬다며, 그래서 연락했단다.


자기가 나를 좋게 봤단다. 웃는 모습이 예쁘더란다. 기존 분들도 마찬가지 인상을 받았단다. 그런 내가 탈퇴하길래 자기들이 뭔가 실수라도 했나 싶었단다. 그럴 리가.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현실 파악이 덜 된 나일 텐데. 혼자 산다고 말해 버린 나일 텐데.


죄송하다고, 실은 내가 싱글맘인데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아이 없는 척을 하고 나니 현타가 왔다고, 그리고 결혼 경험 없는 싱글들의 모임인 듯해 나왔다고 했다. 좁디좁은 세상이니 혹시나 애들이랑 길 가다 마주치면 인사드리겠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으니 괜찮다고, 다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이미 여기 모임에 아이 키우는 아빠도 하나 있다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상황을 설명하다가 눈물이 나고 말았는데 이게 뭐라고 눈물까지 날 일인가 싶어 다시 현타가 왔다.


잠시 뒤 맞은편에 앉았던 운영진 언니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언니는 괜찮다고, 그런 문제라면 다시 들어오라고, 그런 때일수록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고 했다. (합격! 완전 합격!) 모임에서 짧지만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과는 별개로 언니의 그 말이 참 위로가 되고 고마웠다.


자랑할 일도 아니고 더 구차해지기도 싫어서 고민하다가 아무 설명 없이 탈퇴했었는데 연락처를 원했던 분에게 뒷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에 나는 탈퇴할 때보다 훨씬 짧게 고민한 뒤 다시 모임에 들어갔다.


약간의 안면몰수를 감당해야 했지만 어쩐지 정면돌파한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리고 기혼인지 미혼인지 애기가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한 것 같아서도 좋았다. 아이들이 없는 주말에 겪곤 하던 빈둥지증후군도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게 다 편하지는 않았으니, 빈말이 헤픈 사람에게 맘밍아웃을 하여도 태도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이혼녀라고 말하면 길에 떨어진 꽃 줍듯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도 그런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는 잘못 말려 곰팡이 핀 꽃이 되어 볼까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 딸린 이혼녀는 기혼일까 미혼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