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라지고 싶을 때, 헤드폰
주말 아침, 일정이 있어 나가야 했는데 아이 둘을 혼자 챙기며 외출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남편이 지하철역까지 태워 준다기에 사양했지만, 외양간을 고치려는 그가 속죄라도 하려는 듯 재차 태워주겠다고 하자 나는 더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언제나처럼 헤드폰을 챙겨 차에 탔고, 같이 있는 불편함이 통 익숙하지 않은 나는 차가 출발도 하기 전 헤드폰부터 꺼냈다. 연결이 노트북에만 되어 있었는지 음악이 바로 재생 되지 않아 제법 큰 혼잣말로 "이상하다, 이게 왜 이럴까," 하고 부산을 떨다가 "됐다! 이제 노래가 나오네!"를 외쳤을 때쯤 차는 이미 출발했고, 조금은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며 가던 중 신호대기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내 헤드폰 한쪽을 들어 올렸다.
"노래를 들을 거면 노래를 듣는다고 말하고 들어야지요."
그의 목소리에 언짢음이 한가득이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 헤드폰이랑 노트북 들고 연결이 왜 안 되냐 하고 말을 했는걸요? 연결이 된 후에도 이제 들으면 되겠다 하고 소리 내서 말했었구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겠다고 나한테 직접 양해를 구한 건 아니잖아요. 지난번에도 내가 여보 헤드폰 쓰는 거 예의 없는 행동이니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는데, 같이 차 타고 가면서 따로 음악 듣겠다고 말도 하지 않고 헤드폰 쓰고 음악 듣는 거, 너무 예의가 없는 행동이에요. 안 그래요?"
또 예의 타령.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게 꼭 출산 후 과다출혈로 몇 번씩 기절할 때마다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여보한테 직접 양해를 구하진 않았지만, 말로 다 얘기를 했는걸요. 그리고 사실 나눌 대화가... 나눌 말이 없어요. 나한테 뭐라고 말했었어요?"
"어, 됐어요. 이제 말 안 할 거예요."
"여보가 해야 하는 말이 있고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이 있으면 한번 나를 쳐다봐서 들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말을 해도 될 텐데요. 별로 어려운 일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도 다음부터는 직접 말로 양해를 구하고 헤드셋을 쓰도록 할게요."
남편은 뭐가 또 그렇게 불만이었는지 됐으니까 나 듣던 음악이나 계속 들으라고 하는데 이미 기분이 상해서 더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하철역에 도착한 뒤 태워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또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지하철을 타러 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한 삶을 유지해야 할까. 예의 없다는 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들어야 할까. 대체 언제까지 참고 또 참으며 살아야 할까. 예의를 차리는 데에도 기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흔 언저리가 되어서야 배우다니.
살아야겠으니 나는 억울하고 슬픈 마음을 비워내야만 했다. 살고 싶지 않았지만, 밥맛이라고는 없었지만,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신촌 설렁탕집에 들어가 뚝배기 하나를 뚝딱 비웠다.
라면 하나를 다 못 먹어서 어머님이 늘 못마땅해했던 소식좌인 내가 밥 한 공기에 뚝배기 하나까지 남김없이 다 먹고서는 인근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라떼에 화이트초코 마카다미아 쿠키까지 시키고 말았다. 안 먹고 몸을 축내면 결국 내 손해니까—그날은 과식으로 몸을 축낸 것 같기도 했지만—정신줄을 꽉 붙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당 충전을 한 뒤 이제 더는 담아둘 수 없어 흘러나오는 슬픔을 활자로 옮길 준비를 마쳤다.
뚝뚝 떨어지다 못해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는 한 줄, 또 한 줄, 글을 써 내려갔다. 본능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친정 식구들도 다 알고 시아버님도 알지만 당사자만 모르고 있던 내 이혼 소식을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본인에게도 알려야 하는 순간이 임박했다고.
사람들은 알까. 카페에 있는 갈색 냅킨으로 눈물을 자꾸 닦다 보면 한여름에도 볼이 트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