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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26. 2022

크리스마스가 뭐길래 이혼하다가도 시댁에 갔을까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들어왔다 갈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제가요? 어머님 아들이랑 법원에 가서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온 제가요?


깜깜한 마당을 지나 거리를 좁혀오는 아이들과 어머님의 실루엣을 확인하는 그 찰나에도 '내려서 차 문을 열어 줘야 하나, 어머님이랑 마주쳐도 되려나, 그냥 나가지 말고 차 문만 열어줘야 하나,' 고민했던 나였다. 아이들을 반기며, 잘 놀았냐고 인사하며 차 문을 열어주고 벨트 하라고 말하는 동안 어머님이 내 옆으로 오셨고, 나는 어머님을 여전히 어머님이라 부르며 애들 보느라 안 힘드셨냐고 묻기부터 했다. 두 달 여 만에 뵙는 어머님은 펌을 새로 하셨더라. 익숙한 장작 향기를 풍기는 군고구마와 과일이 든 쇼핑백을 건네시는데 그걸 받으면서 괜히 아프도록 목이 메는 나란 사람이 참 우스웠다.


며느리랑 손주 둘 먹으라고 고구마 개수를 맞춰 넣으셨다.



잠깐 들어와서 저녁 먹고 갈래? 하고 물으시는 어머님 말에 제가 무슨 염치가 있어서 거길 들어갈까요 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 순간이지만 환멸을 느꼈다. 아버님은 방금까지 고구마를 굽다가 씻으러 들어가셨다는데, 여기까지 와서 아버님 얼굴도 못 뵙고 가는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에 드는 아쉬움이 야속했고 말이다.


나는 발칙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구나, 나는 아직도 너무나 유교걸(은 아니고 유교우먼)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모든 생각을 구석에 잘 접어두고는, 크지도 않은 내 키가 당신보다 많이 커서 늘 열등감을 비추셨던 어머님의 패딩 위로 등을 쓰다듬으며 손주들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하다고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애들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해서, 네, 그랬다. 애들한테 용돈 얼마씩 줬으니 안 흘리고 다니게 나더러 잘 챙기라시기에 또 네, 그랬다. 나는 또 목이 메었다.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꿈은 발칙왕인데, 나는 틀렸어.





일 년 전, 어머님은 당신의 주방에서 마늘을 다듬던 칼을 내던지셨다. 날붙이가 날아온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차라리 고기 같은 내 몸 위로 수류탄이 떨어지는 게 나을 것처럼 끝도 없이 쏟아졌던 어머님의 폭언은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또 시작이구나 싶은 절망 속에서 그만하시라 말 몇 마디하며 무력하게 서 있던 남편을 원망할 정신도 내게는 없었고, 폭주하는 아내를 말리기보다는 내 옆으로 와 내 팔뚝을 잡으며 네가 참으라는 눈짓을 보내던 아버님에게 왜 또 저한테 그러시냐 물을 기운도 없었다.


이브날 아이들 데리고 좋은 구경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날 아침 갑자기 할머니집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전에는 공부하느라 바쁜 남편을 두고 아이들만 데리고서도 종종 다녀왔던 시댁인데, 지난 달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온 뒤로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결혼 생활을 끝내는 중이지만 아이들에게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뺏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아주 조금만 망설였다.


게다가 "엄마가 아빠랑 살기 싫어해서 아빠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혼하는 거야," 라며 남편이 인과 관계 잘라먹고 포르노 틀듯 아이들에게 이혼 소식을 전했을 때도, 놀라서 한참을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던 첫째가 가장 먼저 한 걱정 중 하나는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 만나냐는 거였다.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우는 아이들을 달래려 사이다를 먹이면서 나는 약속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아빠는 앞으로도 공주와 왕자의 하나뿐인 아빠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공주와 왕자의 소중한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그러니 크리스마스 아침에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말리겠나. 차마 직접 전화는 못 드리겠어서 딸아이에게 전화해서 여쭤 보라고 했다.


"엄마, 근데 갈 수 있어? 아빠가 이제 엄마 아빠 같이 안 살기 때문에 엄마는 할머니 집에 못 간다고 그랬어."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직 어린 아이가 안 써도 되는 신경까지 쓸 필요는 없으니까.


"아냐, 엄마가 갈 수 있지, 점심 먹고 엄마가 할머니 집에 태워다 줄게."

"엄마도 같이 들어갈 거야?

"아니, 엄마는 공주랑 왕자 내려 주고 집에 와서 빨래도 하고 정리도 좀 해야 할 것 같애. 저녁 먹고 놀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갈게."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이,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서류 제출 이후 쭉 생각했다. 엄마랑 있는 것도 좋지만 아빠도 시간을 못 내는 판국에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도 받고 오면 좋겠다 싶어 아이들을 기꺼이 할머니집에 데려다줬다. 운전대를 잡고 나니 거의 도로주행 처음 나가는 사람처럼 긴장되고 떨렸지만 잘 출발해서 잘 도착했고, 마주칠 낯이 없어 아이들을 내려다만 주고 얼른 차를 돌려 집으로 와 점심때 읽다 말았던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펼쳤다.


책에 따르면 내가 내렸던 건 '트라우마'로 잘 알려진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는 결정이며 아들러의 목적론이 더 잘 설명하는 결정이었다. 이미 일어난 불행한 일들은 객관적 사실로 잘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해석하는 건 내 주관의 역할이니 나는 이 슬픈 사건을 디딤돌 삼아 지금, 여기에서 건강하게 도약할 거라고 말이다.

떠나고 없는 남편의 밑줄과 메모가 남아있는 책을 읽었다.



폭주할 땐 꼴도 보기 싫다고 다 꺼지라고 하시더니 분가를 결정하고 나서는 한사코 마음을 돌리려 하셨던 어머님.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해가 된 2022년 올해의 첫날 아침, 시댁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리는 숨 막히는 시간이 끝난 후 어머님이 다가와 내 손을 잡고 나를 안으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때, 울음을 삼키느라 이상해진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것이 어머님의 진심임을 알았다.


내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님과 굳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불편하게 바라보던 시누이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꼬치꼬치 물으면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봐 인사처럼 재밌게 잘 놀았냐고만 묻고 말았다.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온 걸 안다. 아마 테레비도 실컷 봤을 것이고, 좋아하는 음식도 잘 먹었을 거다. 시누이네는 독감에 걸려 친정에 못 왔다 하고,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이서만 크리스마스를 보낼 뻔했는데 아이들이 다녀갔으니 마냥 좋지만은 않으셨을 테지만 두 분도 아이들이 반갑고 좋으셨을 거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모처럼 책을 좀 보다가 깜빡 잠이 들 수도 있었고.


이혼을 하다가 예정에 없던 시댁 방문을 했는데, 자꾸 목이 메어 놀라긴 했지만 불편한 긴장을 뒤로하고 아이들을 데려다준 보람이 있었다. 오늘이 처음이라 낯설고 힘들었을 뿐, 앞으로는 점점 편해지겠지.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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