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되었지만 우습게도 올챙이 꼬리를 달고 살았다네
도비 언니, 도비 언니야, 언니는 정말 때가 타지 않았어요.
이소라가 Track 9에서 노래한 당연한 고독과 평범한 불행과 남들 다 하는 지겨운 이혼을 지나온 그 과정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마음 써준 친구와 통화하던 중이었다. 내가 겪은 어떤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걸 쭉 듣던 친구가 갑자기 내가 때가 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언니는 모범생으로 잘 자란 거야. 나쁜 사람들이 많고 드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걸 못 보고 자란 거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더러운 꼴을 너무 많이 보고 자라서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거든요? 언니는 그런 게 없잖아.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란 거야. 이게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바르고 정직한 가정에서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자란 거야."
그런 면이 있다. 나쁜 사람들도, 드러운 일도 보긴 봤다만 제법 일리 있는 말.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늘 호감으로 대하고. 상대방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 것도 잘 눈치를 못 채고. 언니는 사람을 대할 때 경계선이 없고 다 좋게만 봐요."
"맞아,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그런 마음이 있어."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애가 있다. 외길 가다가 뒤에서 택시가 갑자기 빠바아아앙 하고 클락션을 울리면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가라는 뜻인 줄 모르고 자기 깜빡이 한쪽이 나가기라도 한 줄 아는 순진한 친구가.
"언니, 보통 아이들이 그래요. 그걸 순진성이라고 불러요. 언니는 순진성이 있어. 사람이 어릴 때는 순진성을 갖고 살지만 자라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학습을 하면 순진성이 사라지는데 언니는 안전한 환경에서 너무 모범적으로만 살아서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거야."
맞는 설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른 오랜 친구들한테도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비슷한 말을 최근에 좀 들었으니까. (어디 가서 이혼했다고 말하지 말고 헬스장에도 비밀로 하래서 수다쟁이가 목례 이상은 하지 않고 묵언수행하며 다니고 있다.)
"모범적인 사람들 특징 중 하나가 뭐든 다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최선을 다해, 언니는 육아도 열심히 해, 살림도 열심히 해, 뒷바라지도 열심히 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들 좋게 생각하고, 언니를 좋아하고, 근데 어느 시점에 언니가 힘들어지지."
정말 근래 그런 일들이 있었다. 순진성이라고도 부른다는 내 특징이 나를 해친 사례가. 친구가 듣더니 이런 조언을 해 줬다.
"이제 언니는 어릴 때 하지 못한 성장을 해야 해요. 어린아이의 순진성을 버리고 경계선도 잘 설정하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기가 예민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의심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잘 살 수 있어요. 공주랑 왕자한테도 그런 걸 알려 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진짜 이 밤에 열불이 터져서 갑자기 상담을 하고 있네."
상담일 하는 친구와 얘기하다 보면 가끔 내가 내담자가 되기도 한다. 생존 본능 덕분에 갈등을 회피하는 본성을 거슬러 이혼하며,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일에 너무 진심으로 반응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다 늙어 이제야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밍아웃 하면서도 느꼈는데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화 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비극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다.
"너가 너무 화를 내는 걸 보니까 내가 생각보다 더 멍청이였네. 나는 왜 어려서 이런 걸 못 배우고 멍청하게 나이를 먹은 걸까?"
회한에 뼈를 맞고 비명처럼 뱉은 말에 친구 반응이 참 인상적이었다.
"똥 밟으면서 배우는 거예요. 언니가 똥을 안 밟고 곧게 걸어와서 그래요. 사람들이 언니한테 나쁜 마음을 갖고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거야."
"왜냐하면 나라면 안 할 행동이니까. 누구를 해치는 일은 나라면 안 할 테니까. 애초에 나쁘게 알았으면 몰라도."
친구 말이 사람을 너무 쉽게 믿지 말란다. 세상에는 못 믿을 사람이 더 많단다. 경계선을 잘 설정하란다. 이제라도 내가 이혼을 하며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된 게 슬프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친구와 통화하다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고난 멍청함을 이제와 암세포처럼 절제해 낼 순 없겠지만 나는 이제 순진한 사람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발칙한 사람으로, 명랑한 여자로 유쾌하게 나이 먹기로 했다. 이혼을 하며 이제야 순진성이라는 꼬리가 떨어지고 있다. 다른 친구 말로는 아직도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푼순이라는데 이제는 푼순이 꼬리표도 떼고 싶다.
하지만 발칙해지고 싶어도 아직은 머리가 꽃밭인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노래를 즐겨 듣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도비와 함께 노래를>.
Kool & the Gang 오빠들의 Pursuit of Happiness (Rap Version)
이혼이라는 흔하지만 개인의 우주가 전복되는 큰 사건을 겪으며 도른도른해지는 중에도 노래는 듣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