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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pr 14. 2023

맛있게 드시라고 하면 이런 대답 어떨까요

그 흔한 인사에 육성으로 댓글을 달고 말았다


김밥을 좋아한다. 대학 다니며 참치 김밥에 반하는 바람에 결혼 전에도 가끔 집에서 김밥을 싸 먹었다. 남의 나라에 가서도 종종 김밥을 말았다. 단무지도 없고 햄도 없는 내 맘대로 엄마카세 김밥일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내 김밥이 자기 인생 김밥이라고 말하는 한인 친구도 있었으니 솜씨가 썩 나쁘지는 않다. 애들도 골고루 넣어 먹는 김밥을 늘 좋아했고.


제일 최근에 싸 먹은 냉장고 털이용 꼬마카세 김밥. 옛날부터 엄마가 재료를 준비하면 꼬마들이 셀프로 말아서 먹는 시스템이랄까.


한국에 와서는 옛날에 비하면 비싸졌지만 그래도 3천원 정도면 한 줄 살 수 있어 만들지 않고 사 먹은 적이 더 많다. 어느새 단골 김밥집도 두 곳 생겼다. 참치 김밥이 맛있는 집, 그리고 계란 김밥이 맛있는 집. 특히 요즘은 계란 김밥으로 소문난 김밥집을 애용한다. 퇴근 전에 미리 전화로 김밥 두세 줄을 주문하고 포장해 가는데, 이제 가끔은 말 안 해도 애들 먹기 좋으라고 얇게 썰어 주기도 하실 정도다.


맛있는 것만으로도 먹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너무 피곤하고 기운도 없고, 빵은 별로 안 먹고 싶고, 밥이 먹고 싶긴 한데 거창한 건 싫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싫고 해서 고민 끝에 또 김밥을 주문했다. 만사가 귀찮은 바람에 생각 같아선 시리얼로 때우고 싶지만 김밥은 그래도 골고루 먹인다는 생각에 살짝 미안해도 조금 든든한 편이니까. 다행히도 방금 싸 둔 게 있다시며 사장님이 김밥을 바로 내어 주셨다.


김밥 든 봉지를 받아들고 나서려니 사장님이 언제나처럼 인사를 하셨다.


"맛있게 드세요~"


식당 같은 데 가면 으레 듣는 말인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육성으로 댓글을 달았다.


늘 맛있게 먹고 있어요~ㅎㅎ

말을 하면서도 내가 입이 방정이지, 또 주접을 떨고 말았다이래 가지고 언제 푼순이를 면할 수 있겠냐며 속으로 머리를 쥐어박는데 사장님이 되게 기분 좋게 웃는 웃음소리를 내셨다.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면서도 한 번도 못 들어본 웃음이었다. 어머나, 푼순이이길 잘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좋아라 하는 김밥 사서 식사를 때울 수 있다는 게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가 될 만큼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듣고 흘릴 사장님 인사에다가 대답을 길게 하고 말았다. 이제 푼순이는 안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다.




<도비와 함께 노래를>

인도네시아 싱어송라이터 Ardhito Pramono의 Say Hello.


헤어진 애인에게 술 마시다 쎄이 헬로 라는 가사가 나온다. 안 될 말이다.

아침에 왕자가 춤추는 노래 신나는 노래 틀어달래서 틀고 춤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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