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씨의 그래미상 수상을 축하하며
일본 도쿄 출신의 나오코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다고 했다. 음악가가 되고자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역시 어려서 우연히 재능을 발견하고는 혹은 자식을 음악가로 만들고 싶은 부모의 열망에 부응하여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는 무엇보다 많은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을 터였다.
어느 날 콩쿠르 무대에 오른 나오코는 평소처럼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건반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온몸이 얼어버리는 무대공포증이 계속되어 결국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 왔다고 했다.
영화 <굿윌헌팅>의 배경이 되었던 보스턴의 한 커뮤니티 스쿨의 텅 빈 강당에서 그녀는 몇 마디 말로 짤막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고는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피아노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랜드 피아노의 긴 건반의 양끝을 오가며 튕겨 오르는 손끝의 움직임만으로도 너무나 현란한 연주였다. 빈 강당에 들어와 허락도 없이 피아노를 치는 것이 조마조마했던 나는 어느새 지금 듣고 있는 나오코의 연주가 강당 밖으로 울려 퍼져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음악을 들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나보다 두어 살 위인 나오코는 그날 이후 왠지 더욱 누나처럼 느껴졌다. 검은 단발에 얇은 테 안경을 낀 그녀는 분명 미인이라 불릴만한 얼굴이었지만 순간순간 그 속에 흐르는 무뚝뚝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미련을 지워버리려 이국까지 건너온 결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해 겨울 나오코를 따라 몇 번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들으러 갔다. 그녀는 전직 피아니스트답게 취소되거나 다 팔리지 않은 표를 현장에서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해의 송년 콘서트는 29년간이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던 오자와 세이지가 다음해 비엔나 필하모니로 자리를 옮기기로 정해진 까닭에 그를 아끼던 보스턴 사람들과 보스턴에 사는 일본 사람들이 유독 많이 찾아왔다.음악에 맞추어 거장의 어깨는 노를 젓듯 출렁거렸고 하얀 단발은 앞뒤로 찰랑 거렸다.
나오코는 콘서트가 끝나고 대기실로 가면 연주자나 마에스트로(지휘자)를 만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대기실 밖에는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송년콘서트를 마친 일본인 지휘자를 만나고자 하는 방청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유독 눈에 띠었다.
잠시 후 오자와 세이지가 대기실에서 나오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순서대로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지만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좀처럼 그의 주위를 떠나려 하지 않았지 때문에 오자와 세이지는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내 앞 사람들의 정체(停滯)를 나의 차례가 되었다. “이 사람, 천재구나”
살면서 몇몇 천재라 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지금도 딱히 천재란 어떠어떠하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잠시 마주하기만 하여도 별다른 설명 없이 천재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번쩍거리는 눈과 천진한 웃음, 거장이 뿜어내는 천재의 빛이 나를 압도하고있었다. 좀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의 외모가 <스타워즈> 속 요다와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위대한 음악가는 음악을 통하여 우주의 메시지를 지구인들에 전달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렇다면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주의 메시지를 받고 우주의 메신저와 만난 지구인 중 하나이겠지.
그는 내 커다란 다이어리에 사인을 해주고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몇 마디를 더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의 음악을 칭찬하는 말을 빼먹지 않았으리라. 나는 들고 다니던 수동 카메라로 주위에 있던 누군가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중에 필름을 현상하여 보니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아 나와 오자와 세이지는 형체만 뿌옇게 나오고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만 뚜렿이 찍혀 있었다. 이 사진 속 장면을 전후로 그날의 기억은 세월과 함께 지워져 복원되지 않는다. 나오코는 나와 함께 대기실로 가지 않았던가? 콘서트가 끝나고 우리는 밥이라도 같이 먹지 않았을까? 심지어는 그날 나오코가 송년 콘서트에 나와 함께 갔었던가?까지. 기억은 잡아보려 할수록 더 멀리 뒷걸음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궁금하다. 그녀는 이후에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며칠전 새벽, 런닝머신 위에서 오자와 세이지가 그레미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여전히 희고 부스스한 단발이지만 벌써 십 수년이 지났으니 거장은 이제 완연히 노인이 되었다. 텔레비젼에 그의 단원들과 일렬로 서서 활짝 웃는 얼굴이 나왔다. 입 주위 양 옆으로 깊게 주름이 패인다.
반갑습니다, Mr.오자와.
내가 사는 후쿠오카 오하시에는 유명한 장어(우나기 うなぎ)구이집이 있다. 쿠로다야(黒田屋).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십여년 전부터 처가에 오면 장어를 먹으러 이곳에 왔다. 이 가게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오자와 세이지가 가게에 들렀을 때 남긴 사인이 걸려 있다. 천재답게 악필이라 할 만한 그의 사인이 옆에는 이곳에 들렀을 당시 이 가게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꽂혀있다. 중년의 천재는 여전히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다.
오자와씨의 그래미상도 축하할 겸, 여름이 깊어 가니 그의 사진이 붙어 있는 가게에 장어나 먹으러 가야겠다. 장어와 함께 아사히 맥주를 병으로 주문하고 한 번 더 오자와씨를 만났던 날을 이야기하리라. 와이프는 여러번 들어 온 나의 자랑에 짜증을 내겠지. 이 집 장어는 언제나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