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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Oct 22. 2023

글쓰기의 잔기술

경향신문사에서 소설가 최민석씨가 진행하는 ‘글쓰기의 잔기술’이란 글쓰기 강좌를 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명(作名) 답게 ‘글쓰기의 잔기술’라, 매혹적인 제목이다. 잔기술이란 무엇인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전체적인 퀄리티를 높이고 상대의 움찔하게 할 만한 기술, 피나콜라다에 꽂힌 노란색 우산, 떡볶이 위에 살짝 뿌린 깨소금, 트로트 가수의 꺾기, 배구 선수의 시간차 공격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6주 동안 화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잔기술‘을 배우려 신사동 사무실에서 정동까지 내달렸다. 6시 ‘땡’하면 눈치 보지 말고 사무실을 나서야 그나마 수업 전에 김밥 한 줄이라도 먹을 시간을 벌 수 있다.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5호선 광화문역에 내려 서둘러 걷는다. 조금만 더 발품을 팔았더라면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길과 정동길을 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김밥 한 줄과 바꾼 서울의 밤풍경이 아쉽기 그지없다.     


경향신문사 6층 강의실 이름은 ‘여적향(餘滴香)’이다. ‘여적’이란 그림이나 글씨를 쓰고 남은 먹을 말한다. 지금은 누구도 알아듣기 힘든 단어가 되었지만 뜻을 찾아보고 나면 ‘여적향’이란 ‘남겨진 먹의 향기’가 아닌가. 벼루에 남아 있는 먹물의 시커먼 색깔과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동시에 떠오르는 멋진 단어이다. 남은 먹은 어이할꼬. 호롱불 밑에서 쓰임을 다한 먹의 쓸쓸함과 그 먹물을 바라보며 붓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비의 망설임이 교차한다. 


‘잔기술’을 배우려 모인 사람들이 속속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쉰 명 남짓. 내가 하다 하다 정말 별 수업을 다 듣는구나 하며 신청한 수업인 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별 것을 다 들으러 왔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나이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의 남녀가 삼분의 이(2/3), 사오십대가 남은 수의 절반, 그리고 육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되어 보이는 고령의 수강생들이 나머지를 자리를 채웠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SNS에 글을 올리는 시대인지라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세이 같은 문학적 글쓰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책 읽는 사람이 사라져 간다는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글쓰기작가로 성공하는 것과 유튜버로 성공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능성 있는 일일까?


작가가 되는 사람은 시대를 불문하고 성공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 그들에게 작가가 되는 이유를 물으면 많은 작가들이 그저 쓰는 것을 좋아서, 혹은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라 답한다. 잘 모르겠으면 다 팔자 탓인가. 내가 보기엔 작가는 젊었을 때 자만심에 차서 시작하여 취업 시기를 놓치면서 비(非) 자발적 작가로 남고 계속 쓰다 보니 실력이 붙어 그중에 운이 좋은 극소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다시 극소수가 죽어서 평가받는 게 아닌가 싶다. 


수업은 수강생들이 강사에게 보내온 글 중 몇 편을 함께 읽으며 진행되었다. 수강생들의 글쓰기 수준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사람도 여러 명, 출판을 했거나 앞으로 출판을 앞두고 있는 작가도 여러 명이라 했다. 매주 이메일로 제출한 나의 글들은, 여러분들이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매번 강사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어찌나 칭찬을 하였는지 나는 그의 글을 읽어보지 않고도 그가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곧 그의 책을 사서 읽어으리라)


글쓰기 수업은 재미있고 유익하였다. 수업을 듣는 6주 동안 매주 한 편을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야 하니 평소에도 항상 쓸 거리를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억지로라도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쓰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이렇게 갑자기 발이 묶이게 된 때에 글쓰기라는 유익한 취미로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모두 글쓰기 수업 덕이다.     


나의 독자들 중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글쓰기 수업을 추천하고 싶다. 경향신문사(정동)에는 계절별로 글쓰기 특강이 열리고 한겨레신문사(공덕동)에는 보다 다양한 글쓰기 강의가 온/오프라인으로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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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1월~2월 서울 경향신문사에서 들은 글쓰기 수업에 대한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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