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100일 간 금주를 한다. 술을 마시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100일 간 술을 끊는다는 것이 무슨 별일이냐 하겠지만 나 같은 주당에게 100일 간의 금주는 매우 영향이 크다. 주당들은 삶의 패턴과 인간관계가 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내가 술을 끊었다고 하면 같이 술 먹던 이들의 원성이 대단하다. 또 또 하면서 그런걸 왜 하냐고 한다. 그럼 이제 너랑은 더 못보겠다는 협박파가 있는 가 하면 차라리 끊어라 라는 저주파, 늙으면 마시고 싶어도 못마실 텐데 마실 수 있을 때 하루라도 더 마셔라 라는 유혹파가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술을 끊었다는 이유로 연이 끊긴 친구는 없다. 요 몇 년 간 누적으로 900일을 금주를 했으니 이제 협박도 저주도 유혹도 별반 효과가 없음을, 누가 뭐라해도 하겠다면 한다는 내 고집을 이제 그들도 안다.
왜 금주를 하는 지? 왜 꼭 100일 동안 술을 안마셔야 하는 지? 술 마시자는 친구들에게 약속을 미루고 피하기 힘든 술 자리에 나가서도 콜라를 홀짝이려면 그들이 이해가 갈 만한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100일 간의 금주는 술과는 별 상관이 없다. 이 부분이 내 친구들이 나의 금주를 가장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하다. 건강상의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주사가 고약해서도 아니다. 물론 특별한 이유가 없이도 습관처럼 술을 마시는 한국 사회에서 음주 선택권을 나에게 가지고 오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건 그저 멋있게 둘러대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100일 동안 술을 안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생각한 목표를 끝까지 견지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서다. 나의 과거를 돌아 보면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쉬이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나의 약한 의지를 다스리고 싶어졌고 그 습성을 스스로 고치기 위하여 100일 동안의 금주라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술이냐 할 수도 있다. 나에게 술이란 일상 속에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고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도구이다. 그런 술을 걸만큼 나의 약한 의지, 쉬이 포기하는 습관을 바꾸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특별히 어떤 계기와 의미가 있어서 금주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 이제 다시 금주를 할 때가 왔구나 하고 느끼면 그 후 몇 일 간 꼭 가져야할 술자리를 서둘러 가지고 금주에 들어간다. 그 즈음이 되면 이 정도면 충분히 마셨네 하고 스스로 느끼게 되는 지도 모른다. 요사이 나의 의지를 지켜내는 근육이 조금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면 스스로를 뺑뺑이 돌려보고 싶은 고약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암튼 그냥 시작하자 하고 시작을 하게 되고 100일은 언제나 생각보다 길다.
100일이 시작되면 마주하는 첫번째 어려움은 몸에서 술 기운을 빼는 일이다. 더운 날, 열심히 일한 날,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하늘이 좋아서, 심심해서, 바빠서, 옛날 여친 생각나서 등등 술을 마시는 이유는 오만가지이다. 당연히 술자리도 사흘이 멀다 하고 빈번히 벌어진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술을 마시기 보다는 술을 마시기 위해 어떤 이유든 찾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술은 뇌가 즐기고 우리 몸이 땡기는 음식임이 분명타. 이런 술을 단번에 탁 멈추면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일반적인 반응은 밤이 되면 목이 무척 마르고 캬 하는 목넘김이 그리운 정도이지만, 우리보다 더 술이 고픈 우리의 뇌는 어떻게든 이 결심을 뒤엎고 술을 한 잔 마실 이유를 찾는다.
이 갈등의 시기를 지나 뇌가 술을 포기하는 데까지, 다시말해 술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데까지는 경험상 약 2주가 소요된다. 이 정도 쯤 되면 저녁에 목이 마르면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실 수도 있고, 소주를 없이도 돼지갈비를 뜯을 수 있다. 그럼 그 2주 후 부터는 편안한 시간이 흘러가냐고? 진정한 고행은 그 이후부터 시작이다. 술이 달래주건 심심함과 외로움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우리의 시간을 채워주던 만남과 취기의 즐거움이 사라진 하루. 그 하루의 연속. 또 연속. 심심함과 외로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결핍이고 술은 이들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극복하게 해 주는 위대한 발명품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술의 축복을 평생 누리고 살던 사람이 술을 외면하면 그의 부재를 대체할 무엇을 찾아야 한다. 나는 아직 술처럼 완벽한 처방을 만나적이 없지만 아쉽게라도 무언가를 부여 잡아야 한다. 드라마에 심취하여 밤을 보내든, 몸짱이 되겠다고 미친듯이 운동을 하든, 그동안 미루었던 공부를 수험생처럼 하던가, 아니면, 밀린 글을 쓰는 것이다.
이른 새벽, 오늘부터 해가 지면 매우 심심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싱숭하여 충동적으로 오대산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전나무길, 월정사, 선재길을 거쳐 상원사, 적멸보궁 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무어라도 하여 외록고 심심한 100일을 조금 더 생산적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한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이 떠올렸다. 그리고 단지 나의 금주 스케줄과 글쓰기 스케줄이 딱 떨어지는 이유로 주저 없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무리한 산행으로 발목은 욱신거리지만 선재길의 좋은 기운을 받아 좋은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금주와 함께하는 100일 간의 글쓰기가 나의 또 하나의 꾸준한 습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