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난폭 운전
20240905 일산 킨텍스
* 빌런 Villain : 창작물에서 악당이나 악역을 뜻하는 영어 단어
빌런의 운전은 난폭했다. 택시 기사는 자유로를 시속 140킬로로 질주하며 좌우 두 세 차선을 한번에 넘나들었다. 50대 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는 깍뚜기 머리를 하고 두꺼운 팔뚝으로 강아지 갈비뼈처럼 얇은 헨들을 요리조리 휘둘렀다. 뒷자리에 나란히 타고 있던 나와 회사 직원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자의 안전벨트를 당겨 메었다.
그는 급발진과 급제동을 반복하며 8차선 도로를 가로로 칼질을 하며 달렸다. 무엇엔가 단단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다. 내 아름다운 삶을 이 자의 난폭 운전에 맡길 수는 없지... 좀 천천히 갑시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말을 들은 빌런이 뭐라고? 맘에 안들면 내 차에서 내려! 하며 당장 차를 갓길에 세울지도 몰라 나의 항의는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나이가 들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의 기분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 관계를 그르치고, 일을 그르치고, 손해를 본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여전히 울컥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들이 많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 와서야 당장의 화를 꾹 참고 속으로 샘을 해보는 노련함을 조금 갖추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도 자기의 성깔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아직 청춘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이들의 대부분은 어느 날 몰아서 뭇매를 맞는다.
빌런의 차 안에 실린 나의 몸은 짐짝처럼 좌우 앞뒤로 흔들렸다. 나는 뒷좌석에 달린 손잡이를 꼬옥 잡고 멀미가 날까봐 차창 밖 먼 곳을 바라보았다. 토가 나오기 전에 욕이 먼저 나오려 했다. 다행히 토도 욕도 나오기 전에 빌런의 차는 도착지에서 멈추어 섰다. 장하다 중년이여 또 한번 잘 참았구나. 노련함은 우리를 성가심에서 구한다.
세상에는 별별 빌런들이 있다. 삶의 경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빌런들에 관해 여러 가지를 일깨워 준다. 어디를 가든 일정 비율의 빌런이 존재한다는 것, 누군가 그들을 바꿀 수도 없지만 그 일이 나의 일은 더더욱이 아니라는 것, 내 주변에 빌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내 자신이 빌런일지도 모른다는 것.
《맹자(孟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중략) 이는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과실이 있은 뒤에 능히 고치니, 마음이 곤궁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은 뒤에야 분발하며, 얼굴빛에 드러나고 목소리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야망이 있으나 현재 처지가 곤궁하여 분발을 하고 싶은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면 "마음이 곤궁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은 뒤에야 분발하며"라는 귀절에 방점을 찍을테지만, 나처럼 못된 성질 탓에 크고 작은 손해를 보고 살아온 이들은 그 다음 귀절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얼굴빛에 드러나고 목소리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자신의 기분이 표정으로 목소리로 드러나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내어 버리면, 정의감에 공명심에 누군가를 시원하게 들이 받으면... 그 때에 깨닫게 된다. 손해를 보고 후회를 하며 깨닫는다. 나의 기분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빌런의 차에서 내려 빌런을 생각하다가 스스로가 빌런이 아닌지 아니었는 지를 돌아본다.
인생의 스승은 어느 곳에나 있다. 간혹 우리 앞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