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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류온센(청룡온천)

20240916 후쿠오카

by 박종호

후쿠오카시의 남쪽에 인접한 나카가와시에 있는 세이류온천에 들렀다. 이사 오기 전 우리 집은 후쿠오카의 남구에 있었기 때문에 세이류온천이 막 생겼을 때부터 자주 들렀다.


일본에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온천이 흔하다. 가장 오래된 온천이라는 시코쿠 에히메시의 도고온천*은 역사가 3000년에 이른다. 그런 일본의 온천들에 비하면 이제 막 생긴 세이류 온천은 그야말로 신식 온천이다. 신식이라고는 하지만 천장이 높고 목조가 드러난 일본식 온천의 전통적인 건물을 잘 구현하고 있고 특히 멋지고 넓은 야외 온천(로텐부로, 露天風呂)이 구비되어 있다. 넓은 실내 온천과 잘 꾸며진 노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휴게실과 건강한 재료롤 만든 식사가 나오는 식당까지. 세이류 온천은 기본을 갖추고 과하지고 모자람도 없는 편안한 장소이다.


일본 사람들에게 온천은 단순히 목욕의 의미를 넘어 피로를 풀고 여유를 즐기는 행사이다. 가족, 연인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혼자서 온천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온천에 들어서면 종교의식을 행하듯 자기만의 순서로 온천을 즐긴다. 내실 온천 - 야외 개인탕 - 휴식 - 사우나 - 실내 냉탕 -등. 사람들의 서로 다른 온천 방법을 순서와 유형별로 분석할 수 있다면 MBTI보다 더 정확하게 성격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온천은 여유로운 시간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즐겨야 제 맛이다. 온천도 일처럼 열심히 부지런히 즐기는 사람들은 모든 탕에 몸을 담가 보겠다는 욕심으로 탕 사이를 뛰어다닌다. (나의 모습이다.) 중간중간 놓인 의자에서 꾸벅꾸벅 조는 온천 고수들을 보면, 의문의 일패를 느끼고 억지로 속도를 늦추게 된다. 노천에 몸을 담그면 뻥 뚫린 하늘에 걸린 구름이 말한다. 힘을 빼라, 생각을 놓아라.


온천은 회복의 시간이다. 탕 안에 들어서면 뜨거운 온천수의 열감이 온몸을 부여잡는다. 아- 시원하다! 하는 말은 너무 아저씨스러워서 아직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지만, 후끈 몸을 감싼 열감이 잠시 후 푸근함으로 바뀌고 온몸에 힘이 스르르 빠지는 순간, 아- 시원하다! 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양수로 돌아가듯 몸이 디폴트(정상)로 회귀하는 시간이다. 몸 안에 독소가 빠져나간다. 스트레스가 흩어진다.


온천이 주는 치유의 혜택을 충분히 누렸다면 이제 낮잠으로 회복의 정점을 찍을 시간이다. 다다미로 만든 휴게실에는 온천 고수들은 이미 창가의 볕이 좋은 자리를 잡고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앉아서 가지고 온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뒤적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곧 누울 것이고 금세 잠이 들 것이다. 꿈을 꾸지 않아도 좋다. 꿈을 꾸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이니. 온천 후의 짧은 낮잠의 힘은 놀랍다. 잠깐 잤는 데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하다.


비웠으니 채우는 시간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슬슬 배가 고파온다. 온천을 하는 동안 신진대사도 좋아지고 세포들의 회복에 적지 않은 에너지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규모의 온천에는 식당이 붙어 있다. 정말 외면받는 온천이 아니라면 온천 안에 있는 식당은 믿고 먹을 만하다. 지방의 특산품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건강한 식단들이다. 스트레스를 덜어낸 몸에 양식을 채워 힘을 북돋아 주자.


아, 맥주.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잊지 말자. 온천 후에 마시는 쨍하니 차가운 맥주는 다시 한번 힘내보자는 활력을 부른다.


(후기)

온천의 기본은 수질에 있다. 유명한 온천지일수록 온천수의 유효성분이 풍부하고 온천수의 다양한 기대 효과를 홍보한다. 내가 최고의 온천수라 여기는 온천은 장인댁에서 걸어서 10분이며 닿을 수 있는 하카타온천이다. 이곳은 야외 온천이나 별도의 사우나도 없이 아주 작은 목욕탕 같은 규모이다. 온천에 들어서면 물을 받아 몸을 씻는 작은 탕(가케유)이 있는 데 이 가케유의 온천수가 나오는 옆에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컵이 놓여 있다.


하카타 온천의 물은 짜다. 바다와도 한참 떨어져 있는 온천에서 어떻게 짠맛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이 온천에는 일본의 최고 등급의 온천수라는 설명이 붙어있고, 그 설명에 부합하는 문구들이 적혀있다. 3일 온천을 하고 땀띠가 낫지 않으면 환불. 찌는 듯 습하고 더운 일본 날씨에는 쉬이 땀띠가 나는 데, 이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땀띠가 낫지 않으면 온천비를 환불한다는, 약장수 같은 말이다.


하카타 온천의 물을 마시면 배탈이 낫고 목욕 후에 땀띠가 사라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배탈이 낫고 땀띠를 치유한 나는 장인 장모를 뵈러 가면 언제나 이 온천에 들른다.



*도고온천의 웹사이트에는 유튜브를 온천 정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거리에 설치된 CCTV 같다. 3000년 동안 수많은 저 문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주인장은 앞으로 3000년은 그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https://dogo.j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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