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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김성근 #야구인 #인생은순간이다

20240923 인천2터미널

by 박종호

김성근은 야구인이다.

김성근은 82세이다.

김성근은 현역이다.

김성근은 승부사이다.


나는 야구를 잘 모른다. 한국 남자치고는 야구를 전혀 모르는 축에 속한다고 그래서 김성근이란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너는 최강야구도 안 보냐 묻는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이른 아침 비행기였기에 새벽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마지막까지 이번 출장에 어떤 책을 가지고 갈지가 고민이었다 출장에 가지고 가는 책은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으면서 피곤할 때에도 펼쳐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어야 한다 오늘처럼 네댓 시간의 비행시간이면 도착하기 전에 책 한 권 정도는 다 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지고 간 책을 비행기 안에서 다 읽어 버리면 막상 출장 중의 심심한 아침저녁시간에 읽을거리가 없어진다. 나는 어젯밤까지 고르고 고른 후보 두 권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출발의 순간에 그중 한 권을 집어 들었는 데 두 권 중 편하게 읽는 감성적인 책보다는 의욕을 북돋고 실용적인 책을 택했다.


새벽의 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볐다 주말이나 연휴가 아니어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평소에는 먹지 않지만 라운지에 오면 본전 생각에 챙기는 컵라면을 먹으며 책을 읽어 주는 유튜브를 들었다. 유튜버는 김성근 감독의 책, <인생은 순간이다>을 읽었다. 책 속의 감독의 말은 묵직한 직구가 되어 퍽하고 내 맞빡(이마)에 내리 꽂혔다.


나는 출국장 반대편 끝에 있는 서점으로 달렸다. 보딩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나는 김성근 감독의. 책을 한 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이번 출장은 이 무서운 노인과 함께 하는 거다.


점원은 매대를 한 바퀴 돌더니, 지금은 다 팔려서 없는데요라고 간단하게 통보했다. 아 네. 하필이면… 나는 그럼 언제쯤 다시 들어오나요?라고 물으려 했지만 어차피 기다렸다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행히 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들고 다니다 영 다른 자리에 꽂아 놓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서점 구석에서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김성근 감독을 집어 들었다.


<인생은 순간이다> 노감독의 책은 쉽게 읽혔지만 묵직했다. 그의 말은 직구와 변화구가 오갔지만 대부분 묵직한 직구이다. 읽는 이에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타협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무어라 해도, 내가 틀릴지는 몰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각을 이야기할 때 그가 살아온 삶 보다 더 날카로운 논리와 부동의 증거는 없다.


그의 책을 일휘관지하는 단어는 '일구이무'(一球二無)이다. 두 번째 공은 없다. 마치 9회 말 2 아웃 3 볼 2 스트라이크에서 마운드의 투수의 공처럼, 이 말은 이 순간이 중하니 후회 없이 열심히 놀라란 말로도 쓰일 수 있겠지만 김성근 감독의 취지는 모든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라는 취지이다. 그의 열심히란 무엇인가? 목숨을 거는 것이다. 잇쇼켄메이니. (一生懸命に : 일본어로 ‘열심히’란 이 말은 목숨을 걸고라는 뜻이다)


그의 열심은 매번 벌어지는 목숨을 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다. 죽거나 아니면 산다는 절명의 자세로 최선을 다 해라. 내일을 위하여 열심을 아끼지 말라. 지금, 오늘을 살기 위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 해라. 그는 그 열심 속에 발전이 있고 인간의 잠재의식이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살았고 많은 선수를 그렇게 키워냈다.


김성근은 승부사이다. 평생을 야구판 안에 살아온 그는 지금도 <최강야구>에서 승과 패를 거친다. 승과 패가 반복되는 야구 게임에 아쉬운 패배는 얼마나 많은가? 정말 열심히 하였지만 안 되는 경기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최선의 결과이며 이미 벌어진 현실이다. 좋게 말해 줄 수도 있고 기왕이면 열심히 했다고 말해줄 법도 하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야구하는 감독은 가벼운 변명과 다른 사람들의 달콤한 위로 뒤로 숨지 않는다. 게임에서 진 그는 배가 갈리고 팔이 잘린 듯 분한 것이다. 그가 말하듯 무사시의 진검의 승부였다면 그는 그의 선수들은 모두 죽었다. 죽음 앞에 이 정도면 잘 싸웠다란 말이 위로가 될 수 있는가.


위로를 걷어 차고, 그래도 잘 뛰었다는 말을 안 하는 감독은 참 모질다. 하지만 감독은 그 순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는 분하다. 당장에 이 경기를 분석하고 분발하여 더 연습하고 다음 경기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외치고 있다.


김성근은 승부사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벌겋게 날이 선 칼을 양손에 들고 상대를 노려본다.



김성근 감독의 책을 읽으며 야구의 매 순간에 목숨을 거는 승부사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또한 야구라는 길에 생을 걸고 모든 순간 앞으로 나아가려는 수도자이다. 두 번이나 선수과 가족도 모르게 암 수술을 받고 돌아와 기저귀를 차고 펑고를 쳤다는 이야기에 3000피트 고도의 비행기 한편에서 울컥 눈물이 솓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며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야구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을 하였다는 이 멋진 사나이에게, 여든이 넘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살 발하게 상대를 노려보는 이 노련한 승부사에게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멋진 사나이를 만나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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