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150세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by 박종호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터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1970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이 만담 속 이름은 5대 독자의 장수를 기원하는 서영감이 점쟁이에게 받은 이름이다. 긴 이름에서 한 자라도 빼먹고 부르면 독자가 죽는다는 점쟁이의 경고 때문에 아들을 서영감은 아들을 부를 때마다 "김수한무"에서 시작하여 "바둑이는 돌돌이"까지 빠짐없이 불러야 했다. 1990년대 한 코미디 프로에서 이 만담을 패러디하며 다시 한번 공전의 유행어가 되었고 나 또한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한다.


김이라는 성씨의 뒤에 오는 수한무는 수명이 무한히 길다는 말이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 즉 갑자 60년을 3000번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 동방삭이다. 그 뒤를 십장생인 거북이와 두루미가 따르고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라는 아프리카의 최장수 인물이 운율을 맞춘다. 물론 이런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워리워리 세브리깡은 치치카포가 먹었다는 약이다. 내친김에 상표 등록을 해 볼 법하다. 므두셀라는 그나마 근거가 있다. 그는 아담의 8 세손이자 방주를 띄운 노아의 할아버지로 성경 인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라 한다. 969세를 살았다. 그다음의 '구름이 허리케인 담벼락 서생원 고양이 바둑이'는 무한 루프로 이어지는 전래동화에서 왔다고 하는 데, 그냥 재미있으라 붙인 말이다. 그 뒤에 강아지 돌돌이로 끝을 맺는 데 이는 만담 속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강아지 이름이다.


북악산 중턱에는 만세동방 약수터가 있다. 커다란 바위에서 물이 흘러내려 바위의 움푹 파인 곳에 고였다가 흘러내리는 데 그 위의 바위에는 만세동방 성수남극이란 글이 세겨져 있다. 이 영험한 장소의 이름 속에 나오는 동방이 바로 김수한무... 바둑이은 돌돌이 안에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다.

만세동방

만수동방은 만 살을 산 동방삭이란 뜻이니 3000 갑자, 즉 18만 년에 비하면 턱 없이 겸손한 칭호이지만 인간의 수명으로 만년도 18만 년도 가늠이 되지 않는 시간이니 굳이 따질 일이 아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성수남극은 임금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말이라고 한다. 성수는 임금의 수명을 이르고 남극은 장수를 상징하는 별이다.


이상이 만수동방 약수터의 앞에 세워진 소개글인데 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리학자 중에 이 불확실한 글귀에 대하여 똑 부러지게 해석을 내놓는 사람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바위에 크고 잘 쓰인 글씨를 새겨 놓을 정도이면 분명 더 깊고 웅대한 의미가 있을 텐데, 설마 그렇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임금의 목숨을 기원하는 내용이려나. 얼굴도 모르는 임금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의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이들이 이곳에 와서 흐르는 물을 받아 가고 정성 어린 기도를 올렸으리라.


너무나 시원한 날씨에 북악산을 올랐다. 매일 아침 오르는 말바위를 지나 숙정문, 청운대까지 올랐다. 멀지 않은 길이지만 이마에 송송이 땀이 맺혔고 그 땀을 시원한 바람이 날려주었다. 지난여름 호우에 북악산 정상에서 부암동 창의문 쪽으로 이어지는 긴 성벽이 무너졌다고 한다. 청운대에서 정상 백악마루로 오르는 길도 닫혀있다. 나는 평소처럼 삼청공원 쪽으로 바로 내려오지 않고 오랜만에 만세동방을 지나 대통문 코스를 걸었다. 경복궁과 청와대를 위에서 내려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 코스이다.

삼청동을 거쳐 안국동 윤보선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안동교회의 부속 한옥인 소회당에서 불무 김재완 선생의 기와새김 전을 보았다. 전시회의 제목은 정반합. 기와는 기와였다가 기와가 아니었다가 다시 기와가 되었다가 정반합의 설명이다. 기와에 그림을 새겨 넣는 와각화는 김재완 선생이 새롭게 만든 장르이다. 놀랍게도 이 분은 국어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선생은 교직에서 은퇴 후 하나의 시도로 와각화를 시작했고 이번이 선생의 첫 번째 전시이다. 첫 번째 전시이며 비전공자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수준이 높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밑에는 선생이 직접 고르고 적은 글들이 적혀있다. 작품의 의미와 설명이다. 글 쓰는 이의 글답게 짧지만 힘이 있고 감동을 준다. 친절한 전시회라는 부재와 어울리게 관람객이 없는 시각, 나는 김재완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의 재미있는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0세 시대라 한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수명이 넉넉히 120살이 될 것이고, 지금의 의학 발달의 추세라면 지금의 중년들은 150세, 20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저 바람이 아니고 과학적인 추세이고 닥쳐오는 현실이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어휴 끔찍해"란 말을 먼저 한다. 너무 길다는 뜻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의 노인들을 보며 100살도 버겁게 느낀다. 건강하게 사는 100세라면 어떠한가? 건강하게 사는 150살이라면 어떠한가? 그 대답이 무엇이라고 하여도 우리에게는 그런 초장수 시대가 올 것이고 우리는 그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만세동방을 보고 인간 수명의 길이에 대하여 생각하며 산을 내려오는 차에 은퇴한 교직자의 전시를 보았다. 새로운 길. 그것을 개척하는 데 굳이 지난날들이 장애가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도전하지 못하는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동방삭은 그 긴 삶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그가 얼마나 혹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는 지도 궁금하다. 늘어나는 삶의 길이를 축복으로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이다.

그저 살아있다는 의미의 명과 달리 수는 의미 있는 인간의 삶에만 부여하는 글자이다


keyword
이전 11화3yo와 4yo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