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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yo와 4yo #저요?

세대차이, 건너기 쉽지 않은 깊은 골짜기

by 박종호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강의를 들으며 요즘에 유행한다는 '삼(3) 요'와 '사(4) 요'를 들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가 3요이고 여기에 지금요? 를 붙이면 4요라고 한단다.


그걸 아직도 몰랐냐고? 그렇다. 나는 다행히 이런 '요'를 들은 적이 없다. 아니면 눈치가 없거나.


3요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누가? 나이 많은 상사들이. 그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일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문제일까. 이 말을 하고 듣는 두 집단에는 서로 다른 경험과 사고방식이 장착되어 있다.


기성의 직장인들은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고 정년을 체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좋은 직장일수록 회사에서 나오는 복지와 높은 수준의 급여를 오랫동안 누리다가 퇴직하는 것을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삶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이 세대에게 자기 발전이란 직장 안에서 인정받고 조직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있어야 하는 조직이니, 그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고락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간다. 또 들어온 순서대로 조직을 떠나는 연공서열의 사회이다 보니 조직 안의 구성원들은 맨 꼭대기에서 말단까지 서열이 존재하고 이는 권위와 비례한다. 부하직원은 상사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부하직원들이 몸을 갈아 넣어 만든 보고서로 상사가 승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가능하고 공을 가로채는 불합리가 횡횡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도 언젠가는 상사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 상사가 누렸던 편의와 프리라이딩(무임승차)을 자신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력은 언젠가라는 미래에 보상받는 이른바 '지연된 보상'이다. 이전의 세대에게 지연된 보상은 너무나 당연하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에 만연한 것이었다. 그 시대의 직장인들은 모두 상사가 퇴근한 후 퇴근을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중에 가족보다 직장 동료와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 나는 직장 생활 내내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란 구호가 항상 가슴에 척하니 와닿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청년들을 광풍처럼 빨아들였던 공무원 시험은 그 인기가 점차 사라져 간다.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기껏 합류한 공무원 사회에서 이탈하고 있고 그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진 지는 한참 전이지만 이제는 한 직장에 오랜 시간 다니고 싶은 사람도 없고 누군가 평생 고용을 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손사래를 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세대들은 어느 직장에 다니는 가 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직장이 자기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스스로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직장을 선택할 수 있고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직장에서의 보수와 인정 못지않게 자기의 삶의 중요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가족과의 시간, 연인과의 시간, 친구와의 시간이 단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다는 이유로 침해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전의 세대처럼 언젠가는 나도... 하며 오늘을 갈아 넣는, 지연된 보상을 이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직장은 영속하지 못하다. 그러니 내가 일한 만큼의 성과를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고 이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정당하게 받기를 바란다. 이것이 정의이다.


기성의 직장인과 신세대의 직장인은 결국 사무실이라는 전장과 업무라는 전투에서 마주한다.


이대리, 내일 아침까지 이것을 해 놓아, 술자리에 참가하려 퇴근하는 박부장은 엑셀의 귀재라고 소문난 이대리에게 넌지시 자기 일을 던졌다. 이대리는 박부장의 예상대로 네!라고 대답하기 전에 먼저 컴퓨터 모니터 속 시간을 확인한다. 네 시 삼십 분, 아직 퇴근 시간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마무리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빠듯하다. 박부장은 그의 인사권자이다. 그가 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고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대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시킨 일이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넘는 일이라면, 또 그가 이대리에게 업무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라고 강요한다면 이대리는 그가 받은 고가에 대하여 당당하게 항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가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오늘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한다면, 그는 저조한 성과를 내고 이로 인해 낮은 고가를 받을 것이고 이런 경우에 그는 어떤 변명으로도 자신의 저조한 성과와 낮은 고가에 대하여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예전의 직장인들이라면 우선 네!라고 대답을 하고 그다음 일을 생각했겠지. 우선 네!라고 대답하고는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거나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부장님이 시킨 일을 완벽하게 마치고 나서 밤늦게까지 어떻게든 자기의 일을 끝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부장님에게 인정받을 자신을 생각하며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빈 사무실을 나오겠지. 하지만 지금 이대리에게는 그런 희생을 강요할 어떤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침 회의 때 팀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려놓고 별로 하는 일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점심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사무실을 뜨는 부장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친절로도 그의 일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이 회사를 위해 일해 온 선배에 대한 존경? 아 그런 것은 개나 주어라. 딱 보니 자기 일이 아닌 것을 파악한 우리의 이대리는 박부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걸요?


어, 어, 말은 안 나왔지만 박부장은 무척 당황한 표정이다. 어 그게, 이대리 엑셀을 잘한다면서? 이런 것은 식은 죽 먹기이쟎아? 금방 해 놓으라고, 내일 아침 봐. 이 불편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 그를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박부장의 몸은 이미 반쯤 문 쪽을 향해있다. 오늘은 이 놈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셔야지. 요즘 것들은 역시 싸가지가... 라 생각하는 데 그 싸가지 없는 부하가 부장의 면전에 펀치를 날린다.


제가요?


이런 젠장. 박부장은 문 쪽으로 쏠려있던 몸의 중심을 다잡고 똑바로 서서 이대리를 쏘아본다. 어, 이대리, 당신한테 시키는 일이야. 회사 생활 하루 이틀이야? 상사가 시키면 하고, 까라면 까는 거지 뭘 자꾸 물어? 이것 봐 회사는 운명 공동체야. 그걸 여태 몰라? 내 일, 네 일이 없는 거야. 상사가 급하면 부하직원이 하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급한 일이면 끝내고 퇴근하는 거지. 말을 쏟아 내며 스스로 점점 더 열을 받은 박 부장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뿜어 나와 이대리의 두 눈에 꽂힌다. 아쉽게도 이대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 눈빛이다. 그는 재벌집 막네 아들인가? 사장의 숨겨 놓은 아들인가? 아니다 그는 지금 부장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병신. 이대리의 입에서 욕이 나올 뻔했다. 이대리는 부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리는 박 부장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사세요? 왜 그렇게 비겁하게 살아요? 그러나 선량한 그는 차마 이 어르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기에는 눈앞의 꼰데가 너무 가소로워 보여 이렇게 말했다.


왜요?


카운터 펀치. 박부장은 아무 말도 없이 사무실을 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왠지 엘리베이터 문이 평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꽝! 하고 닫힌 듯하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삐뎄으니 술은 열심히 퍼드시겠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이대리는 이미 다른 절을 섭외 중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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