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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추억

길상사, 법정스님 그리고 어린 왕자

by 박종호

길상사, 법정스님 그리고 어린 왕자

비가 한 차례 내리더니 시원한 가을이 되었다. 나는 삼청동 길을 따라 북악산 둘레를 지나 성북동 길상사에 왔다. 이곳은 당대 최고의 요정이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이나 주인 김영한 씨가 1997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며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경내를 돌아보면 성북동 자락에 이렇게 넓은 절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이 자리가 요정이 있던 자리라 들으면 더욱 놀란다. 꼭 집어 무엇 때문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절과 요정은 극과 극의 이미지이니, 그 당시 대원각을 다니던 사람이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 변화를 더욱 실감하리라.


'맑고 향기롭게'. 이는 길상사의 모토이자 설립의 취지이다. 평생을 학승과 선승으로 산속의 절과 오두막에서 은둔하여 지내던 스님은 길상사를 세우며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보다 많이 만나게 되었다. 오두막을 떠나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은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세상에 나오는 까닭은, 그 뜻이 그만큼 중하고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세상을 보다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명이라 여기신 모양이다.


중학교 때 나는 법정 스님의 대단한 팬이었다. 스스로는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당시 법정스님은 누구에게나 대단한 사랑을 받으셨으니, 나는 스님을 알지만 스님은 나를 몰랐다. 중학교 때 범우사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무소유>는 내가 읽은 스님의 첫 책이었다. 십 대의 소년은 정갈한 문체와 산속 생활의 고요함, 수도의 정신에 빠지어 작가의 <물소리 마람 소리> <텅 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등을 내리읽었다. 스님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때 묻지 않은 산속 생활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스님이 보고 느끼는 자연과의 공감이 마치 나의 경험처럼 다가왔다.


몇 번인가 편지를 쓰려했다. 실제로 몇 자를 적었던 기억이 나는 데, 막상 스님에게 무슨 말을 하려니 특별하게 할 말이 없었다. 독자는 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에게 독자는 생면부지의 남이다. 나는 편지 쓰기를 단념하고 직접 한번 찾아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년 아이들과 순천을 여행하며 송광사에 처음 가 보았다. 버스로 논, 밭과 산길을 한참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송광사는 쉽게 갈 수 있는 절이 아니다. 나는 우선 송광사에 전화를 걸었다. 운이 좋으면 법정 스님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전화기 너머로 스님이 인도에 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즐겨 읽으셨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도 <어린 왕자>라고 한다. 어릴 적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던 <어린 왕자>는 불어와 한글 번역본이 함께 있는 책이었는 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3년 출판되어 무려 세로 쓰기로 쓰인 책이었다. 그 책 안에 <머리말을 갈음하여>라는 소제목으로 법정 스님의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있다.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누워서 들어. 그래야 네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야.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 네 목소리는 들을수록 새롭기만 해. 그건 영원한 영혼의 모음(母音)이야. (중략) 네 소중한 장미와 고삐가 없는 양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너는 항시 나와 함께 있다. (법정,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스님이 살아계실 때 진정으로 스님의 뜻을 이해하고 스님을 평생 옆에서 지지하였던 유일한 동지는 어린 왕자가 아니었을까.


스님은 인생의 두 권의 책을 꼽으라면 불경인 <화엄경>과 <어린 왕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역시 스님이 법문과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책이다.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적인 생활을 했던 소로우의 생활은 스님의 오두막 생활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나도 월든에 가본 적이 있다. 호수의 주변에 소로우가 직접 만들었다던 그의 오두막이 재현되어 있고 호숫가에 그가 걷던 산책길 중간중간 그의 일생에 관하여 설명하는 그림들이 붙어 있다. 소로우의 오두막은 아주 작고 조촐하다. 그는 담백한 생활을 지향했다. 스님의 <무소유>, 오두막 생활과 통한다. 나는 월든 호수 주변을 걸으며 소로우의 평화로운 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을 찾은 스님도 그 길을 걸으며 소로우와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리라.


소로우는 여가가 사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즉 사람이 부자냐 아니냐는 그의 소유물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없이 지내도 되는 물건이 많으냐 적으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유를 극도로 제한했지만 초라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련된 정장, 교양 있는 사람들의 몸짓과 말투 등을 모두 벗어던져버렸다. 그는 선량한 인디언들을 좋아했다. (2009년 9월 7일 자 동아일보 <법정스님, '자연주의 상징'월든에 가다> 중에서)



2010년 스님이 돌아가셨다. 텔레비전에서는 스님의 다비식을 생중계하였다. 그동안 나는 여러 나라를 떠돌다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스님의 책을 읽은 지도 오래되고 산속에 사는 삶에 대한 매력도 잊은 지도 한참 되었지만 다비식을 보니 눈물이 났다. 오랜 벗과의 이별처럼 느껴졌다. 스님은 이제 어린 왕자의 별로 가시는구나.


길상사에는 개천이 흐르고 올해도 꽃무릇(상사화)들이 한가득 피어있다.

맑고 향기롭다.


(후기)


심사가 복잡한 날이면 지금도 가끔 유튜브에서 스님의 법문을 찾아 듣는다. 스님의 말과 글은 스님 생전의 생활처럼 소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스님은 종종 자연을 빗데어 삶의 이치를 설명하셨다. 자연을 보면 인간의 도리를 알 수 있다. 새와 벌레, 꽃과 풀까지 온갖 자연은 인간보다 더 나을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지구라는 별 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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