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의 자세

글쓰기를 위한 자세, 뻔뻔하게 밀어 붙이기

by 박종호

인간은 하루에 몇 가지 생각을 하는가? 요즘 잘 나가는 인공지능, 퍼플렉서티(Perpexity)에 물어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문헌 중 몇 가지 참고할만한 자료를 모아 주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인간은 하루에 4만 가지 생각을 하고 그중 90%는 어제와 같으며 그중 90%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무엇을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작가의 상상력인가 아니면 추론일까. 4만 가지의 측정방법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그 생각이 어제와 같은 지, 그 대부분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아, 이런 질문은 T들이 F의 문학적 상상에 딴지를 거는 말인가?


몇 해 전 2021년 캐나다 퀸스대학교 조던 포팽크 박사팀은 인간이 하루 평균 6200번의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는 시간 8시간을 제외하고 1분에 6.5가지 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184명이 실험에 참가하고 첨단의 자기 공명 영상(MRI) 장치가 동원되었다. 복수의 연구진이 첨단의 과학 기술로 실험을 통하여 밝혀낸 과학적 사실이다.


나는 캐나다 대학의 연구 결과가 베르베르가 책에 쓴 단 몇 줄의 문장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논리와 가정, 실험과 검증이라는 과학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간이 하루 중 몇 가지 생각을 할까요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실험이 증명한 6200이란 숫자를 기억할까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4만이란 숫자를 기억할까.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베르베르의 4만이란 숫자를 믿는다. 유명인이 흘린 거짓 정보는 은근슬쩍 상식으로 통용된다는 증거이다.


6천이든 4만이든, 상상이든 실험이든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하루에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들을 모두 기록한 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쓰는 도중에도 여러 번 다른 생각들이 튀어나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 글은 생각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냥 방임된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어 놓은 것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무작위로 튀어 오르는 생각, 잡념들을 누르고 (나는 한 번도 고구마 줄기를 뽑아본 적이 없었지만 흔한 비유로) 하나의 주제로 생각들을 고구마 줄기 뽑듯 이어가는 것, 기록할 만한 생각들을 적은 것이 글이다.


그래서 말이지 매일 저녁이 되어 글을 쓰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나는 도대체 오늘 하루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 중 적게 잡아 6천 개의 생각을 했다면 그중에서 무엇이라도 좀 끄적거려 볼만한 내용이 하나쯤 있어야 할 텐데, 아무런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 중 떠오른 수많은 생각 중에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은 이토록 없다는 것인가? 우리의 생각 중에 90%는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는 베르베르의 말이 신빙성 있게 들리기 시작한다.


글은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하지만 나는 글은 동시에 생각을 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아무런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누가 이기나 봅시다 하고 버티고 있으면 오늘처럼 어찌어찌 글이 하나 써진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나는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도저히 안 써지는 글이란 없다. 재미없어도 그냥 써내려 가고, 말이 안돼도 조금 뻔뻔하게 밀어붙이고, 그렇게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막판에는 어떤 글이든 되어있다. 물론 그 글이 읽어 줄만 한 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불금이다. 인사동을 휘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