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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를 훔친 사나이

#빈센조페루지아

by 박종호

#빈센조페루지아

1911년, 빈센트 페루지아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쳤다. 얼마 후 그는 고향 이태리로 돌아와 한 부호에게 그림을 팔려고 하였다가 그 행적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페루지아는 법정에서 나폴레옹 시절 프랑스로 넘어간 다빈치의 작품을 고국 이태리로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이태리 법정은 술렁이는 여론을 따라 그에게 매우 짧은 형량을 선고하였다. 단 6개월 형이었다. 홍길동의 도둑질을 벌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가 훔쳤던 모나리자는 현재 그 파생 가치가 약 6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 1999)>을 떠오르게 하는 이 대담한 절도는 모나리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환경운동가들, 채식주의자들, 세상에 불만이 있는 이들이 모나리자를 향해 위해를 가하며 시위하는 것도 모두 이 그림의 유명세 때문이다. 그림 속 여인, 당시 거상의 아내였다는 리사 씨는 이 그림 덕분에 그 얼굴과 이름이 세세에 남았다. 돈이 많았던 그녀의 남편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의 아내는 그림 속에서 천수를 누린다.


이 그림 한 장은 시간을 가로질러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녀는 왜 눈썹이 없는가, 다빈치가 원래 눈썹을 그렸는 데 세월에 지워졌다는 둥, 눈썹을 미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는 둥. 호사가들은 구석구석의 디테일에 여러 가설을 만들고 나름의 근거를 들이대며 논쟁을 벌인다. 그들의 구라, 상상력과 가설의 이야기들은 그림이 가진 예술적 가치 위에 더 많은 재미를 얹는다. 그들의 논쟁과 해석을 보고 있으면 그림 보다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이 드러나기도 한다.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그 앞을 가로질러 걸으면 그녀의 눈동자가 따라 움직인다는 괴담도 있다. 기분 탓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한 번쯤 루블루 박물관에 걸린 그림 앞을 걸어보고 싶어지기도 하지 않은가. 그림 속의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라는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가리키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웃거나 우는 표정으로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만 어떤 때는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기도 한다. 양 극단의 표정이 오가는 어느 순간에 그 두 표정이 섞이기도 하지 않을까. 다빈치는 그녀가 웃다가 막 울려는 순간을 포착했거나 그 반대의 찰나를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증인이 사라지고 증언이 남아있지 않은 가정들이니 아무 말 잔치를 하여도 반박할 도리가 없다. 나는 어쩌면 마담 리사는 원래 그런 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그런 표정으로 오랜 시간을 있을 수 있을까. 리사 씨에게는 조금 실례입니다만 그녀는 원래 그렇게 생긴, 웃는지 우는지 알지 못하는 어색한 얼굴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른다. (증인도 증언도 없으니 이 또한 진지한 가정 중 하나로 남겨두자)


광화문 교보문고 워캔드 아트홀에서, 17년째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김찬용 씨의 강의를 들었다. 4주간 매주 목요일에 열리는 강의 중 첫 번째 강의이다. 강의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을 소개하며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유명 작품을 감상하고 성향이 대치를 이루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해설을 들으니 평면의 그림은 다차원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작가들이 작품에 숨겨 놓은 상징들을 알게 되며 작품의 의미는 더욱 풍부해졌다. 그 시대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면 작가의 의도가 더욱 생생히 드러나고 그동안 평범하게 보았던 작품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또 더 많은 이해가 생겨나면 더 넓은 상상의 공간이 열리고 그림에 그려진 사건과 인물의 전후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되며 작품이 더욱 재미있어진다.


그림들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 준 재미있는 강의였다. 한 두어 달 파리에 눌러앉아 박물관이나 실컷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지 않은가. (인생,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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