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 MBTI 검사를 접했다. 20년도 전 이야기이다. 진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실시했던 검사였다. 물론 MBTI 결과를 토대로 전공 학과에 지원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우리는 수능 첫 세대였고 점수에 따라 부모님이 선호하는 전공과 학교를 택하는 것은 학력고사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 MBTI 결과를 보고 어린 마음에도 이거 신기하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십여 년이 지나고 나는 다시 MBTI를 접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사내 갈등 해소와 조직 문화 쇄신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다. 구글과 애플을 선두로 제조업에서 콘텐츠로, 세계의 산업 중심의 이행이 빠르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삼성은 구성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 문화 쇄신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사람들은 MBTI 결과지를 받아 들고 서로의 결과를 비교하며 수다를 떨었다.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을 했을 뿐인데 자기의 성향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이것을 네 개의 성향과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신기했다.
조직원들의 성향은 파악하였지만 이런 앎이 오래된 조직, 게다가 한참 잘 나가는 조직의 문화를 바꾸지는 못했다. 척은 했지만 정말 바꾸려는 의지가 있었는 지도 의심스럽다. 삼성은 아주 일찍 새로운 시대에서 부딪히게 될 자신의 한계를 느꼈지만 결국 제조업이라는 업태가 지니고 있는 수직적인 조직문화, 노동시간에 기댄 생산성, 정형화된 업무 규정을 뛰어넘지 못했고 밖에서 보는 모습은 여전히 그러해 보인다.
몇 년 전부터 MBTI가 한국인의 국민적인 성격 감별 기준이 되었다. 온라인에서 간단하게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MBTI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모두 정말 잘 맞는다라는 반응이다. 처음에는 이 검사가 어떻게 사람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가, 검사 결과가 검사를 하는 당시의 기분으로 좌우될 것이라는 회의론이 팽배하였지만 막상 테스트를 해 본 사람들은 상당 부분 MBTI의 성격 판별을 신뢰하게 되었다.
이제는 기업의 채용에서도 동호회 크루(회원)를 모집하는 글에도 선호하는 MBTI와 기피하는 MBTI를 써넣는 경우가 생겼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피로를 일으키는 지를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스트레스와 갈등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어울리지 않는 성향의 조합이라는 것을 MBTI는 이 시대에 일깨워 주었다. 생산적이지 못한 정서적 갈등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캐미(성향)가 잘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시너지를 내자는 시대이다.
MBTI 차별 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슬슬 나올 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MBTI로 인해 받는 차별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잠깐, MBTI로 인한 차별이라니? 본말이 전도된 표현이다. MBTI는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였을 뿐이고, 사람의 성향의 차이는 원래 존재한다. 그것을 차별이라 한다면 MBTI가 있기 전부터 어떠한 성향의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거나 미움을 받아 왔다는 말이리라. 자기의 성격으로 인한 타인의 반응이 불공평하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항의할 수 있는가?
한 회사에서 어떤 MBTI를 임의로 배제하였다면, 실은 누구라도 그런 회사에는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막상 해당 MBTI의 사람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라며 억울해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굳이 자기의 성향이 싫다는 조직에, 아마도 그가 들어가면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람들로 둘러싸여 남들보다 갑절을 고생을 해야 할 그 회사에 제 발로 들어갈 일이 있을까. 그 회사의 구성원들은 자기들과 어울리는 성향에 확신이 있기에 감히 채용공고에까지 기피하는 성향을 적었을 터이다. 굳이 오지 마세요라는 사람이 억울해한다는 이유로, 그게 공평해 보이지는 않다는 이유로 그를 뽑아 놓고 그와 맞추어가기 위해 모두가 정서적인 부담을 지어야 할까? 우리 회사에는 이런 사람은 어울리지 않아요란 말이 우리 회사가 선호하는 인재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강한 F이다. 하지만 매우 강한 T와 결혼하였고 또 강한 T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T를 변호하고 싶은 게냐. 그렇다. 나는 F로서 T의 장점을 말하고 싶다. T는... 꼭 집어 떠오르지 않는다. 장점이 너무 많아서 이겠지. 그래도 머리를 더 쥐어짜보자.
T는 빨간 팬 선생님이다. 그때그때 보이는 데로 나의 실수와 단점을 지적한다. 그러니 나는 이분들 덕분에 잘못된 길을 빠지지 않고 큰 실수를 할 확률도 현격히 줄어든다. 또 이들은 내가 감정에 빠져 합리적이지 못한, 특히 손해를 볼 법한 행동을 사전에 막아준다. 이성적인 T들은 나 같은 F가 감정에 휩쓸려 소용돌이로 빨려 들려는 순간, 옆에서 '너 왜 그러니?'란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나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눈빛이다. 냉정이나 냉소라는 단어를 쓰지는 말자. 그 눈빛은 나를 감정의 함정에서 구하고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게 해 준다. 또... 아, 장점을... 아직도 너무나 많다. 감사한 마음에 숨이 턱 차 온다.
앗 내가 또 무엇 그대들에게 지적받을 말을 한 것이냐. 신이시여 T에게도 인간의 따스한 마음과 너그러운 아량을 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