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호 Oct 03. 2024

행복의 정복#버틀란트러셀

20241003 광화문 교보문고

대학 동기가 책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졸업 때 내가 그동안 썼던 글들을 엮어 재본을 한 책이다. 책 표지에는 흑백으로 웃고 있는 어린 내가 보인다.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친구는 계속 공부하여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나의 책이 나왔다고 한다. 헌책방 사장님이 가져간다고 집 앞에 내어 놓은 책들의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수레로 세 개는 족히 될 듯했다. 평생에 두 번을 읽기는 힘든 분량이다. 그렇기에 나의 책도 저 두꺼운 책들 사이에서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교수님께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영어 원서를 빌려 동기 몇 명과 함께 학교 복사실에서 제본을 했다. 요즘 벽돌책이라 불리는 책들이 담장을 세우는 빨강 벽돌이라면 그 책은 중간에 구멍이 뚫린 허연 시멘트 벽돌이라 보면 된다(너무 올드한 표현이다. 아주 두껍고 크다는 뜻이다.) 이 두꺼운 벽돌책은 단 몇 번을 펼쳐 보고 오랫동안 내 서재의 한 자리에 방치되다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사진을 보내준 대학 동기가 헌책방에 보내려 쌓아 둔 책들 사이에 그 당시 나와 함께 제본하였던 <서양철학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책도 몇 번 펼쳐보지 않은 오래된 새 책이겠지?


몇 년 전 서점에서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서양철학사>가 나왔다. 1056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문고판으로 단단하게 생긴 책이다. 나는 명색이 철학과 출신인데 이제라도 이 책 한 권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니 여차하면 무기가 될 법한 단단한 모양새에 반하여 이 책을 샀다. 서점을 나와 바로 맞은편 카페에 들어가 한참을 읽었다. 그래 보아야 앞부분 몇 장이지만. 그래도 영어 원서보다는 많이 읽었다. 그날 이후 이 책은 나의 서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나는 학부 1학년 필수 과목인 서양철학사를 언제 마칠 것인가.


오늘은 새벽부터 버틀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웬일인지 게으름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오래전 소설가 김영하 씨의 팟캐스트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김영하 씨는 책 읽기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 영상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팟캐스트는 유튜브 등의 영상 매체에 밀리어 사라져 간다. 텔레비전에 밀려 사라지는 라디오처럼 왠지 짠하다.

    

서점에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재고가 없었다. 서가에 꽂아 놓을 만큼도 안 팔린다는 뜻이다. 버틀란트 러셀의 번역서도 상당 수가 절판이다. 책을 읽는 것이 독특한 취미가 되어가는 시대이니 좀 오래된 책들은 힙하고 튀는 책들에 밀리어 사라져 간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서점까지 온 김에, <서양철학사>로 두 번이나 포기한 러셀을 읽자고 마음먹은 김에 저자의 <행복의 정복>(사회평론, 이순희 역)을 집어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서점에 올 때마다 살까 말까를 망설였던 책이다. (러셀이란 사람의 책에 두 번이나 당했으니까) 나는 책을 사들고 카페에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 보고 싶은 제목이다.


작가는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우선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원인들을 설명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지를 제시한다. 목차만 보아도 그 내용이 짐작이 간다. 내용을 읽어보면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례와 문학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들며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행복에 대한 의견과 방법이 참 많다. 텔레비전에서는 남자와 여자, 싱글과 돌싱들이 서로의 짝을 찾고, 혼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미주알고주알 훈수를 둔다. 한 아동심리학자가 나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심리를 분석하여 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가 있지만 귀한 내 자식이란 뜻으로 "금쪽이"란 시대의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모두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심리적 관계적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행복해지는 솔루션이 나오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SNS를 통하여 각자가 어떤 것이 행복한 모습인가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난 행복해요,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지 않겠어요?"라고 외친다. 이 모습을 보고 질세라 자신도 경쟁적으로 사진을 올린다. 여행, 먹거리, 옷, 차, 집, 친구들... 행복도 경쟁인 시대이다. 온라인 속 세상은 전보다 갑절로 행복해진 것 같다.


우리의 주변에는 행복에 대한 솔루션과 방법이 넘쳐나지만 막상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정의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라든가, 명확히 규정을 내려야 그 상황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그런 질문이 자체가 우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용하고 공감하는 '행복'이란 단어에 무엇하려 철학적인 의미를 덧씌우려 하는가?


행복(명사) 幸福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
(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러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철학자이며 현자들의 말속에는 언제나 귀 기울만한 교훈이 들어있으니. 노벨상을 받은 문장가인 러셀의 문장은 수려하지만 위트가 넘친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러셀의 저서 중에는 자신의 책이 절판의 위기에 몰리는 오늘날의 상황을 예언하는 내용이 쓰여있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쓰인 글들은 잘 읽지 않는다.
이것은 문필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사람들이 옛날에 쓰인 글들을 읽는 다면, 새 책을 만드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 버틀란트 러셀.  <행복의 정복>(사회평론, 이순희 역) 31p 중에서



행복은 무엇이다. 혹은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고리타분하고 교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러셀이 서문에서 밝혔듯 그는 누군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그는 대학자인 동시에 시대와 함께한 사회 운동가이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조리한 구조를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나, 그보다 개인의 행복의 추구가, 불행에서의 구제가 훨씬 더 시급하고 핵심적인 과제임을 위대한 철학자는 뚫어보고 있다.

내가 독자들에게 내놓은 비결은 직접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들이며, 이 비결대로 행동할 때마다 나는 더욱 행복해졌다. 이 책의 비결을 통해 불행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 저사서문 중에서  

러셀을 이야기하며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다시는 나오기 힘든 석학이라 칭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시대와 함께 살았던 대석학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불행에서 헤쳐 나오기를 바라며 쓴 책이다. 노인의 잔소리라 생각하고 책을 펼치면 작가의 날카로운 분석과 시대를 뛰어넘는 개방적인 시선에 놀라게 된다. 그의 위트는 격이 있어 좋다. 


집에 돌아오니 아침에 주문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도착해 있다. 내일부터는 러셀 선생께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마침 주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