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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Oct 04. 2024

버스를 기다리며 #곳간에서인심난다#공항버스 6011

20241004 공항버스 6011(안국-인천공항)

몇 주 전 공항 가는 길에 버스는 만석으로 출발했다. 나는 끝에서 두 번째로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고 내 뒤에는 버스를 타지 못한 두어 명의 외국인 다음 차를 기다려야 했다. 이날 나는 한 한국 여성의 새치기를 목격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선 순서대로 짐을 버스 트렁크에 싣고 타는 데, 큰 짐이 없는 이 여성은 심지어 가장 늦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앞에 선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제일 먼저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자리가 넉넉한 평소의 상황이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행동이었지만 버스가 만석이 되고 못 타는 사람이 생기니 그녀의 새치기는 한 사람의 피해자를 만든 셈이 되었다. 버스는 출발했다. 그녀의 새치기가 아니었다면 버스에 탔어야 할 선량한 외국인을 구하기는 너무 늦어 버렸다. 새치기를 목격한 나는 그녀에게 타인의 좌석을 가로챈 불의와 무질서를 따졌어야 했을까.


오늘도 정류장에는 공항으로 가는 사람들로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마음은 초조해졌다. 얼마 전 새벽, 이곳에서 버스에 자리가 없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버스의 위치를 확인했다. 차가 막히는지 버스는 매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걱정들이 생겨났다. 자리가 모자라 내가 못 타면? 지난번 어떤 여자처럼 어떤 사람이 내 앞을 새치기하여 내 자리가 없어지면 어쩌지? 나는 내 앞의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누가 내 앞에 끼어들지는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버스가 천천히 오고 있었기에 조바심은 점점 더 심해졌다.


버스를 탔다. 마지막 자리이다. 자리에 앉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까지 나는 '그깟' 버스 자리 하나에 온통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구나. 어차피 이렇게 타게 될 것을. 갑자기 방금까지의 나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목을 길게 빼고 서서 사방경계를 하고 있는 미어캣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버스를 놓치는 일은 이렇게 가슴을 졸일 만큼 큰  문제가 아니다. 내 앞에서 만석이 되어 버스를 못 탄다면 그것은 애초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 정거장에서 이미 결정 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리를 위해 정거장에서 사람 못 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 누가 내 앞에서 새치기를 하여, 게다가 내 바로 앞에서 만석이 되어 새치기 한 놈은 버스를 타고 나는 못 타게 되면 어떻게 하지? 이란 경우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척 제한적이다. 새치기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적시에  제지하지 못했다면 이미 버스에 탄 사람을 끄집어내어야 하는 데 새치기하는 사람을 잡아내는 것도 차에 오른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도 그다지 선뜻 내키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시비를 피하려 애쓴다. 마음의 평화를 헤치고 심성을 망가뜨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년의 아저씨가 거리에서 성질을 내며 따지는 모습은 이유를 불문하고 꼴불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는 것은 사양합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사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 레인홀드 니부어 (Reinhold Niebuhr)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만약 내가 버스를 못 탔다면 비행기를 놓칠 수 있었을까? 나는 보통 공항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기다릴 정도로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버스를 타니 다음 버스를 타면 되었을 것이다. 혹시 그다음 버스도 만석이거나 시간이 촉박하다면? 나는 택시를 잡아 서울역으로 가서 공항 전철을 타거나, 내친김에 공항까지 택시로 달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선량한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내가 내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으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대단히 고마워했을 것이고 나는 천국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을 것이다. 그럼 자리를 양보하고 택시를 타는 김에 정류장에 남은 이들 두어 명을 택시에 태우고 공항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잘생긴 한국 남자의 친절이 그들에게는 일생의 추억이 되었을 것이고 한국에 대한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좋은 외국인 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때마침 내 뒤에는 늦게 도착한 일본인 젊은 처자 세 명이 정류장에 남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참 잘했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큰 아량의 소유자이다. 상상 속이지만 돈 안 들이고 큰 인심을 베풀었다. 이런 넉넉한 마음씀, 정작 베풀지는 않았지만 베풀 수도 있는 선량한 마음은 칭찬받을만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그렇게 착한 나는 왜 다음 정류장에서라도 선뜻 내려, 다른 사람을 위한 선한 마음을 행동으로 증명하지 못했냐고? 나라고 뭐 별 수 있냐, 사람이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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