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후쿠오카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일본에 관하여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부분이 일본인들의 친절함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경험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 친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일본에 가서 '일본스런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일본의 전통적인 환대문화를 이르는 말이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오코테나시 전통은 다도 문화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오코테나시는 단순히 '손님의 왕이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오모테나시는 극진한 존대와 세심한 배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환대의 태도이다. 유카타(일본의 전통의상)를 입고 무릎을 꿇은 여성이 다소곧이 두손을 모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모습은 오모테나시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유니폼을 입은 중년여성이 양손에 가득 포장된 메뉴를 가지고 나왔다. 종업원은 고개를 숙이며 봉지를 건냈고 운전자는 창문을 열어 메뉴를 받았다. 종업원은 떠나는 차가 큰 길로 나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연거푸 차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급스시집에서 보이는 풍경이 아닌 서민의 식사,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내가 목격한 풍경이다. 어느 나라 맥도날드에서 이런 극진한 친절을 경험할 수 있을까. 오모테나시가 메뉴에 적혀 있지 않은 가장 비싼 메뉴인 이유이다.
이렇게 손님에 대한 극진한 대우가 디폴트(기본)가 되어있는 일본 사회에서는 갑질의 수준도 기대 이상이다. 심지어 싸구려 밥집에 가서도 자신이 응당 대단한, 일본에서는 평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에서 블랙컨슈머라 부르는 소위 악덕 고객의 크레임과 갑질은 일본에서는 아주 양반에 속한다.
일본 사회에서 갑질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는 것이 '도게자'이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데며 사과하는 것을 의미하는 도게자(土下座)는 마치 사무라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듯한 매우 비굴한 모습이다. 아무리 일본이지만 요즘에 누가 도게자를 하느냐 하겠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사과를 요구하며 '도게자를 해라'라는 극단적인 말이 들린다. 들어줄 수 없는 요구로 상대방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자신이 도게자를 요구할 수 있는 갑의 위치임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이다.
최근 일본에 갑질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손님의 갑질을 커스토머(Customer)와 하래스먼트(Harrasement)가 결합된 '카스하라'(カスハラ)라고 부른다. 일본의 독특한 하라스먼트, 괴롭힘 중에 하나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괴롭힘(하라스먼트)
セクハラ (세쿠하라) - 성희롱
パワハラ (파와하라) - 권력 남용
マタハラ (마타하라) - 임신·출산 관련 괴롭힘
カスハラ (카스하라) - 고객에 의한 괴롭힘
モラハラ (모라하라) - 정신적 학대
アカハラ (아카하라) - 학문적 괴롭힘
ソーハラ (소하라) - SNS를 통한 괴롭
한국에는 5년전에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실행되었다.(2018년 10월 18일부터) 우리가 어느 회사이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상담원에게 폭언 폭력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멘트를 듣게 되는 이유이다. 사업주가 상담원, 접객 직원 등을 손님의 갑질로 부터 보호하는 조치를 하지 않으면 최고 1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고, 갑질을 한 손님은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그동안 수 많은 정서적 육체적 피해자를 양상해 온 일본의 카스 하라가 이제서야 법률로 제정된다는 뉴스로 떠들석하다. 일본은 더욱 강력한 갑질 문화가 뿌리 깊게 있음에도 그것을 일종의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회 현상으로 방치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제야 그 것을 방지할 법률을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강제하거나 위반하였을 때의 처벌은 여전히 정해두지 않았는 사실이다. 법률 제정과 시행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오히려 마지 못해 현대적 민주 국가의 규칙을 흉내내려 한다는 의심도 든다.
카스 하라(손님의 갑질)와 더불어 여러 종류의 괴롭힘(하라스먼트)가 21세기 일본이란 사회에 존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괴롭힘의 문화가 일본의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가 얼마나 전근대적 문화에 빠져있는 가를 보여 준다.
군주제 혹은 영주제 시대의 문화적인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일본은 최근까지도 상과 하, 갑과 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 자신의 위치가, 상대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따라 철저히 공손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혹은 시혜를 배푸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는 고양이와 쥐의 관계처럼 약자는 강자에게 지배 받는 것이 당연하고, 찍 소리 못하고 잡아 먹혀도 어디 호소할 곳이 없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파워하라, 카스하라, 마자하라 등 하라스먼트의 단어들이 출현한 것은 기존에 당연히 여겼던 괴롭힘들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카스하라 방지법의 제정은 인식의 차원을 넘어 그것을 진지하게 제지하여야 겠다는 수준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처벌도 벌금도 정하지 않고 구호만으로 남긴 것이 여전히 이 사회가 적극적으로 약자에 대한 보호하려는 의식이 미흡함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도 세대가 바뀌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부러워하지 말자.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친절이 아니라면, 누군가 무엇인가 혹은 그가 자라온 문화가 그에게 지나친 접대를 강요하고 있음을 잊지말자. 그렇지 않아도 급속한 고령화로 일본에는 접객 직원이 사라져간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키오스크로 모든 주문을 하고 로봇이 테이블까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주는 시대가 왔다.
인간과 인간이 마주하지 않으니 오모테나시는 사라지고 카스하라(손님의 갑질)는 기껏해야 키오스크를 부수는 정도에서 그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람을 마주하고 주문할 수 있는 얼마 남지않은 시간 동안, 손님으로 직원으로서의 오코테나시가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오모테나시를 다하자. 서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인간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