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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Oct 06. 2024

범죄의 도구가 된 인간 #야미바이토#어둠의알바

20241006 모모치하마


2023년 5월 8일 오후 6시, 도쿄 긴자에 위치한 명품시계점에서 대범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하얀 가면 강도 사건'이다. 흰 가면을 쓴 세 명의 범인은 흉기로 점원을 위협하고 롤렉스 등 명품시계 100여 점을 털었다. 검거된 범인들은 16세 무직 청소년, 18세 사립고 학생, 19세 음식점 아르바이트생, 19세 직업 미상의 남성이다. 이들은 서로 일면식이 상태에서 메신저를 통해 만나 범행을 모의했다고 전해진다.

하얀 가면 절도 사건의 현장

1. 야미바이토 


일본에서는 최근 야미바이토(闇バイト, 어둠의 아르바이트)라는 단어가 연일 뉴스에 등장한다. 어둠을 뜻하는 闇(やみ, 야미)'와 '아르바이트'를 의미하는 'バイト(바이토)'가 결합된 단어로 돈을 벌기 위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처럼 범죄에 가담하는 것을 말한다. 


야미바이트에는 범죄를 기획하고 지시하는 교사범이 존재한다. 교사역의 지시를 받은 실행역은 범행에 가담하여 상당한 보수를 받지만 전체적인 기획과 의도를 알지 못하고 교사역과 실행역, 실행역들 사이는 서로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철저한 점 조직으로 실행범을 잡아도 교사역은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야미바이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행역을 모집한다. 서민들의 경기가 안 좋은 일본에서 야미바이토가 활개를 치는 이유이다. 야미바이토의 형태는 점점 대담해져 최근에는 강도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야미바이토의 실행역들이 단순 절도에 가담하였다가 우발적으로 상해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다. 


야미바이토는 범죄의 절차를 잘게 잘라 파편화하고 그 일부분을 각각의 실행역에 나누어 맡게 한다. 총체의 범죄를 숨기고 죄책감과 두려움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이다. 전쟁 중에 적군을 향해 방화쇠를 당기고 미사일의 버튼을 누르듯, 교사역과 실행역이 분리되어 범죄에 실제로 가담하는 사람들이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운반책은 자기가 전달한 물건이 폭탄인지 마약인지 알지 못하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해악을 알지 못한다.

일본 정부의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근절 캠페인 포스터. 일본어로 "'아르바이트'가 아닌 범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출처 조선일보)


2. 야미바이토가 늘어나는 현상


이런 야미바이트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칼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 강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야미바이토와 이를 이용한 범죄가 늘어가고 일반인들이 이를 통하여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행동을 유인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익명성

사진출처, 케티이미지

야미바이토가 늘어나는 이유는 범죄의 시도가 빈번해지고 이를 기획하는 범죄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하여 익명성을 극대화된 메신저는 강도들의 복면을 대신하였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공범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암호화된 대화 내역은 그들 간의 접점을 지워버리고 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문 절도범, 강도, 사기꾼이 벌이던 범죄가 아르바이트(파트타임 업무)의 일종이 되고 일반인들을 범죄에 끌어들인다. 


네트워크 속의 자아는 어느 때라도 사라지고 다시 만들 수 있다. 현실의 자아와 분리된 행위의 책임. 이것은 범죄 행위에 대한 저지력 약하게 하는 원인이다. 한바탕 사기를 치고 사라지는 사기꾼들처럼, 크게 뒤통수를 치고 사라진 온라인 속 빌런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선량한 시민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살고 있을 수 있다. 익명성과 함께 자아의 일회성과 창조성은 신분 세탁을 가능하게 하고, 범죄의 시도와 재범을 부추긴다.   


2) 허구가 만들어 낸 절망 


팬데믹을 전후로 코인과 주식 등으로 쉽게 돈을 번 젊은이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의 호화로운 소비는 SNS를 통하여 동세대의 젊은이들을 자극했다. 실제로 이들은 매우 극소수였지만 자신도 이들처럼 추앙받기를 바라는 많은 SNS를 통하여 이들을 사치스러운 생활을 모방하며 마치 그들의 삶이 많은 사람들의 삶인듯한 착각을 만들어 내었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1101/110025543/1

경기가 안 좋은 사회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생활고에 시달린다. 취업에 실패하고 저임금의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바이토족들도 상당수이다. 이들은 SNS 속 허세에 찬 모습을 보며 부럽거나 좌절하거나 혹은 둘 다를 느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자신이 저들과 비슷하게라도 살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저들처럼 큰돈을 벌고 하루라도 저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큰 보상을 약속하는 야미바이토는 그들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에도 그들이 야미바이토로 빨려 들어가는 이유이다. 


3) 온라인과 현실의 착각 혹은 착시

이미지 출처 https://magazine.cheil.com/50870 

범죄의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사회가 범죄에 대한 인식, 양심과 준법의 기준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익명성을 배경으로 걸리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양심의 부재도 일부 존재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큰돈을 훔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정도 일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범죄에 대한 인식의 수위가 낮아진 것도 야미바이토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청소년의 폭력성 증가에 대한 원인을 청소년들이 잔인한 컴퓨터 게임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 지목하였다. SNS와 메신저가 생활의 전반에 보편화되고 점점 더 많은 시간은 온라인의 세상 속에서 살게 되는 온라인 네이티브 세대는 가상현실 속 자신과 현실의 자아가 혼동스럽게 된다. 아니 혼동보다는 두 개의 자아를 인정해야 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도덕성과 행동의 규제가 제도화되지 않고 제재의 범위가 느슨한 온라인의 규칙은 분명 현실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3. 한국의 야미바이토


2023년 12월 16일 10대 남녀 2명이 경복궁에 낙서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른바 경복궁 낙서 사건이다.

2008년 2월 정부의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69세의 남성의 방화로 숭례문이 허무하게 활활 타버린 후 5년 만에 벌어진 문화재 훼손 사건이다. 경복궁 낙서 사건의 범인들은 이실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부터 텔레그램으로 지시를 받은 10대들이었다. 그들은 300만 원을 벌기 위하여 경복궁 서측 영추문 좌우측과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주변 담장에 "영화공짜는 땡땡.com"이라는 불법 사이트 홍보 낙서를 했다. 

숭례문 사건의 범인과 동기가 명확했던 반면, 경찰은 사건은 낙서의 범인이 검거된 후에도 이를 지시한 교사범을 잡고 그 범행동기를 밝히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범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범행의 가담자를 섭외했다. 그는 가담자들에게 경복궁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대단한 범죄가 아닌 것처럼 설득하였다


'월 1000만 원 배달 알바', '오토바이 면허 10대 우대'.., 등의 광고가 SNS와 문자를 통해 오간다. 한국에서도 고액 보수를 미끼로 마약 운반이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가담시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허세애 목숨을 건 젊은이들이 혹 할 수 있는 문구들이다. 한국에서는 어둠의 알바 등의 문구가 그리 널리 쓰이고 있지 않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한 여러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상위 1%를 꿈꾸는 한국인의 'SNS 허세'가 불러온 불행 [인사이트30], YTN


4. 규제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깡패 영화가 늘어나며 조폭들을 미화시킨다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깡패 영화가 줄거나 영화 속 폭력성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럼 우려하였듯이 조폭이 늘었는가? 그들의 세상은 신고제가 아니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가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런 해결법이 횡횡하는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사회가 안전하고 정의롭게 유지되기 규제와 법률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2012

야미바이토가 늘어나고 일반인들이 이에 휘말리는 것을 이유로 인터넷의 익명성을 축소하고 준법의식을 강화하자는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어느 사회나 어느 시대나 일정 비율의 범법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자신의 이익을 타인으로부터 갈취하여 왔다. 이들의 범죄 수법과 사회의 규제 기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소게임을 하며 발전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들의 진화에 대응하여 최소한 일반인들이 범죄에 노출되고 범죄에 대한 시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저지해야 할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범죄와 규제 간의 시소게임의 힘의 균형이 어느 범위를 넘어서면 되돌이기 힘들어진다. 

범법이 우위를 차지해 버린 고담시티에서는 베트맨이란 초인이 나서도 범죄가 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베트맨, DC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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