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7 안국동
가족들과 후쿠오카에 이주한 나는 2016년 이노베이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노베이션 스튜디오는 후쿠오카 시와 규슈 대학교가 주최하는 창업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6개월 간,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오하시 규슈 대학교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40여 명의 각 분야의 사람들이 참가하여 대여섯 개의 팀을 이루고 각자가 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연령과 출신, 직업을 망라한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인근 도시에서 매주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까지 와서 참가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참가했던 팀은 '차리 후쿠오카'라는 팀이었다, '차리(チャリ)'는 일본어로 자전거를 의미한다. 이 팀의 리더는 전직 사이클링 선수인 야마다 다이고로 상(씨)이다. 그는 팀의 아이디어를 내고 팀장을 맡았고 이 팀의 부제는 바이크이즈라이프(Bike is Life, 자전거는 인생이다)였다.
차리후쿠오카 팀의 목표는 자전거를 이용한 지역 사회의 부흥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과 자전거를 탈 때의 에티켓과 교통 규칙을 가르치는 행사를 주관하자, 지방에 자전거 코스를 만들자, 자전거 대여소를 설치하여 관광객에게 자전거를 타고 관광하는 기회를 제공하자 등의 아이디어가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이었다.
나와 동갑내기인 다이고로 상은 몇 번이고 사이클 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는 전직 사이클링 선수였다. 그는 은퇴 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자전거만 타고 살아온 사람이었으니 자신의 특기인 사이클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이노베이션 스튜디오에 참가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이용한 사업화. 다이고로의 사업의 방향과 목적은 명확했다. 자전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는 자전거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고 믿었다. 팀원들이 사업화에 대하여 여러 가지 다른 방향의 의견을 제시하여도 그는 자전거가 연관된 사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했다. 그는 평생을 자전거를 타고도 아직도 자전거에 푹 빠져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프로젝트의 부제인 바이크이즈라이프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그의 삶의 진정한 모토였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는 자전거는 자신의 생명이라고 과장되게 말하기도 했다. 왠지 자전거란 단어가 나오면 다이고로의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후 나는 한국의 기업에 취업하였고 일본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다.
몇 해전 후쿠오카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데 우연히 다이고로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그는 자전거를 가르치는 자전거 스쿨과 자전거 렌털 사업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놀랍고 반가웠다. 그는 프로젝트에서 나왔던 아이디어를 살려 후쿠오카시와 투자사의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규슈의 도시에 자전거 코스를 개발하고 자전거와 관련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바이크이즈라이프. 오랜만에 본 그는 여전히 자전거에 미쳐있었고 자전거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쉬이 무엇에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공이란 미지의 결과보다 백 배 천 배 중요한 것이 즐겁게 미치는 것이다. 생각만 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침이 흐르는 것도 잊고 떠들어 댈 수 있는 무엇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그 멋진, 그 좋은, 그 이쁜 무엇을 인생에 하나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듯 바람 소리가 들린다.
후쿠오카에서 차를 타고 가다 길 옆에 지나가는 사이클을 보면 야마다 다이고로가 떠오른다. 어느 날 좋은 기회에 자전거가 벽에 걸린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보아야겠다.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헤-하고 해맑게 웃던, 그 멋진 사나이의 미소가 그리운 밤이다.
(참고) 바이크이즈라이크 : https://bikeis.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