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습관을 기르는 방법#달리기#나의경험
20241010 안국
지난봄 5킬로 마라톤을 처음 뛰었다. 하프마라톤과 풀 마라톤을 주기적으로 뛰는 사람들에게는 5킬로의 마라톤이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지겠지만 나처럼 평생 뛰는 것을 두렵게만 여기고 살아온 사람에게 5킬로의 거리를 달리는 것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가 달리기를 몸에 익히는 과정을 돌아보며 느낀, 꾸준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법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처럼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혹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거나 무언가 꾸준한 습관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믿음 :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시작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 발자국을 뗄 수 있다. 어려서부터 내 주변에는 잘 달리는 사람들 천지였다. 내가 잘 달리지 못하니 남들은 모두 다 잘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주 짧은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었지만 전력 질주 이후에 숨통을 조여 오는 헐떡임을 참을 수 없었고 긴 거리는 숨이 차오기 전에 다리가 먼저 끊어질 듯 아파왔다.
그렇게 긴 세월, 달리기는 나의 운동이 아니라는 확신에 찬 포기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은 언제나 자기보다 좀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무언가를 잘하면 '저 사람도 하는 데 나라고 왜 못해?'란 거만한 생각을 품게 된다. 집 근처 해변을 따라 뛰는 노인들의 뜀박질이 나에게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나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좀 뛰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2. 포기의 습관화 : 잠깐이라도 시도하고 자주 포기하자.
나는 몇 번을 뛰려고 시도하였지만 잠시 뛰어보고는 한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긴 거리를 오랫동안 뛸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매일 포기했다. 하지만 다음날 또 포기하더라도 일단 시도를 해 보았다. 시도가 있어야 포기할 수 있다. 매일 하는 짧은 시도들이 연습이 되어 포기의 순간이 점점 더 뒤로 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시도를 하니 달리는 시간이 점차,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 좋고 싫음을 떠나 목표만 생각하자
숨이 막혀오고 다리가 아픈 경험은 분명 유쾌하지 못했다. 누군가처럼 멋지게 '까짓것 죽기야 하겠어?'라든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지' 하며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기에는 나의 인내심이 너무나 약했다. 나는 숨 막힘과 다리 아픔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그다지 싫어하지 않기로 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서 못 버틸 정도가 되면 전처럼 달리기를 멈추었지만 이런 상태를 너무 혐오하여 다시는 뛰고 싶지 않은 괴로움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태를 달리기를 하면 응당 이르는, 멈추어 조금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자연스러운 몸의 상태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두려워하고 싫어하지 않으니 힘들어 멈추었다가도 숨이 조금 편해지고 다리가 조금 덜 아파지면 두려움 없이 다시 뛸 수 있게 되었다.
4. 자동 반응 : 생각하지 말고 바로 하자.
연습의 횟수를 늘리는 방법, 매일 빠지지 않고 연습을 하기 위한 방법은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생각하기 전에 바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일어나 뛰어나오거나, 어떤 시간을 정해 놓고 반드시 뛰기로 했다. 관건은 스스로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몸은 언제나 편하기를 원하고 머리는 언제나 변명을 만든다. 이런 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유용하다. 예를 들면, 눈을 뜨면 바로 밖으로 나온다. 체육관에 가면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하지 않고 일단 뛰고 본다 등이다. 어떤 조건에 파블로의 개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반복적 행동에서 만들어진 자동 반응이다. 우리는 이를 습관이라 부른다. 아무리 귀찮던 일도 반복해서 오랜 시간 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5. 나에게 가장 편한 패턴을 찾아라
달리기를 시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하여도 달리기 자체가 가져다주는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고통이 왜 생겨나는 가를 고민했다. 이유는 내가 버티지 못하는 혹은 내 몸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달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천천히 달리니 사실 달리는 흉내만 내는 것이지 걷는 속도만도 못했다. 보폭을 줄이고 호흡이 가팔라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이런 매우 느린 달리기는 제자리 뜀을 하는 모양새이다. 이런 달리기는 놀랍게도 오래 뛰어도 힘들지 않았고 또 놀랍게도 매우 오래 걸어도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힘들지 않은 달리기에서 나는 내 몸에 맞는 달리기 패턴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 패턴을 몸에 익히기 위해 동일한 패턴을 반복했다. 반복을 거치니 조금씩 빨리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6. 오래 보고 욕심을 버리자.
조금씩 나의 패턴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조심한 것은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잘해보자며 스스로를 다그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 데 다시 포기하지 않도록 살살하자. 나는 나 스스로가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힘들지 않게 편하게 달렸다. 남들은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 목표라면 나는 그저 오래 달리는 것이 목표였다.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면 더 천천히 달릴 의지가 충분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남들보다 더 잘 달릴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욕심을 내어 스스로를 재촉하면 의지가 약한 나는 어느 날 '아 힘들어. 너나 뛰세요'라고 나자빠질지도 몰랐다. Slow and Steady(천천히 그리고 꾸준히)는 나의 달리기를 위한 명귀이다.
7. 돈을 써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a bad workman blames his tools
후진 목수는 연장을 탓한다. - 영국속담(캠프리지 사전)
골프를 치는 사람, 낚시를 하는 사람, 배드민턴, 테니스, 자전거, 심지어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연장, 장비 탓을 한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연장을 잘 갖추면 실력 없는 목수도 훌륭한 목수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다.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을 때 그것을 꾸준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 중에 하나는 연장에 큰돈을 지르는 것이다. 이게 얼마 짜리인데, 내가 아까워서 쓴다. 이런 근검의 정신이 습관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다리가 아프지 않게 비싸고 좋은 운동화를 샀고 1년 치를 등록한 체육관비가 아까워 하루를 거르지 않으려 애썼다. 비싼 연장일수록 확실히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 퍼포먼스가 좋을수록 사람은 더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자주 열심히 하니 당연히 실력이 더 늘어난다. 목수에게 연장이 중요한 이유이다.
애쓰지 않아야 즐길 수 있다.
즐겨야 오래 한다. 오래 해야 잘할 수 있다.
이상은 내가 달리기를 통하여 찾아낸 꾸준한 습관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핵심은 애쓰지 않는 것, 애쓰지는 않지만 꾸준히 흥미를 잃지 않고 지속하는 것,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실력이 늘어나고 자신의 방법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거나, 모든 습관을 만드는 데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기록이나 성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아도 삶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더 하여 준, 달리기라는 습관을 만드는 데 꽤나 유용한 방법이었다.
나는 요즘 매일 글쓰기라는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히고 있다. 항상 글감이 없어 막막하고 예상대로 매일 시간이 부족하다. 글감이 없어 어거지로 써낸 글을 보면 내가 이것을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시간이 없어 초조해하는 자신을 보면 참 성격이 팔자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더 편하고 즐겁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오늘이 39일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