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고등학교라 불리던 경기고등학교의 옛터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안국동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넓은 하늘과 산이 보이고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언덕을 올라 자리한 정독도서관 앞에는 넓은 정원이 있다. 너른 잔디밭에는 올해부터 '책 읽는 정원'이란 이름으로 편하게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들과 책장을 비치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가족과 커플들이 찾아와 평화로운 시간을 즐긴다.
책 읽는 정원
정원의 가운데에는 넓은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데 높게 뿜어 나오는 분수나 아름다운 분수대라기보다는 흐르는 물소리가 평화로운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도서관 아래에는 북촌의 한옥과 카페들을 찾아온 외국인들과 커플들이 가득하다. 도서관의 고요함은 언덕 아래의 북적거림과 대조를 이루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정독도서관 분수
도서관 건물은 언덕을 오르막에 맞추어 나란히 지어진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동은 가운데 계단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1동 1층에서 중앙 계단을 올라 2동으로 도착하면 2동의 1층이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3동의 1층이 되는 식이다. 세 개의 동이 중앙 계단 양 옆으로 꽤나 길게 지어졌는 데 아마도 1층은 교무실 양호실 교장실 등이 있었을 것이고, 2,3 층은 복도를 따라 교실들이 쭈욱 있었을 것이다.
정독도서관
지난 한글의 날, 하릴없는 나는 아침에 혼자서 도서관에 왔다. 공휴일 도서관은 휴관이다. 대신에 이른 시간에 한가한 책 읽는 정원에 앉아 책장의 책을 뒤적거렸다. 한강의 시집이 있었다. <바람을 서랍에 넣어두었다>. 아, 한강이 시도 쓰는구나,라고 생각했는 데 그녀는 소설가 이전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나는 시집을 몇 장 펼치고는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서점에 떠들썩하였던 욘 폰세의 <샤이닝>을 읽었다. 서늘한 아침에 읽기 좋은 아주 짧은 소설이다. 다음날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왔다.
책 읽는 정원, 정독도서관
한강은 우리 동네 출신이다. 지금은 공예박물관으로 바뀐 된 풍문여고를 나왔다. 지척의 원서동에 자기가 운영하는 서점도 있다고 한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고 내가 사는 동네 출신이라는 것도 여기에 밝혀둔다.
전풍문여고터, 공예박물관
먼 곳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이란 이름이 발표되고 있었을 그 시각에 내가 이곳 정독도서관의 책 읽는 정원에서 '한강'의 시집을 집어 들고 그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을 읽은 것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낱같은 영향을 준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국가적인 경사를 축하하는 마음과 나의 예지를 이곳에 작은 기록으로라도 남기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