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길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현대건설의 사옥이 있다. 잘 지은 화강암 건물이 떡 하니 서있다. 이곳은 원래 휘문고등하교가 있던 자리라 한다. 현대 건설 사옥 안쪽 모서리에는 조선시대에 하늘을 관찰하던 관천대가 서있다. 경주에서 보았던 첨성대의 모습과 닮았다.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다.
계동길을 사이에 두고 현대 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사옥의 맞은편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는 베이커리 오니언과 도토리가든도 이곳에 있다. 이 길을 따라 큰 한옥을 두 채를 이어서 만든 북촌문화센터가 있다. 재작년 이곳에서 저녁시간에 한동안 서예를 배웠다.
조금 더 지나면 계동길과 창덕궁으로 넘어가는 길이 교차하는 데 이 모서리 건물에 맛집이 두어집 들어서 있다. 주말 아침에는 교차로 코너 왼쪽부터 길게 꼬리를 내린 줄이 보이는 데 이 줄은 런던 베이커리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교차로를 가로질러 계동길을 이어 걸으면 작은 가게들과 집들이 모여있는 오래된 동네, 계동의 모습이 펼쳐진다.
내가 2년 전 이곳 안국동으로 이사 와 아침저녁으로 가장 많이 걷는 길이 이 계동길이다. 새벽에는 산에 이 길을 따라 북악산에 오르고 점심 식사를 하고도 보통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한다. 저녁에도 바람이 좋으면 이 길을 따라 길 끝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까지 걷는다. 이 길을 자주 걷는 이유는 이 동네가 가진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아서이다. 얼마전부터 동네에 관광객들이 모이면서 낮시간에는 외지의 사람들이 길을 가득 채우지만, 이 길을 따라 중앙고등학교와 대동세무고등학교 등 학교가 두 개나 있고 한옥을 비롯하여 주택과 빌라가 많아 여전히 오래된 동네의 포근함이 있다.
게동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철물점이 보인다. 우리 회사 사무실 창에 블라인더를 설치해 준 사장님의 가게이다. 중년의 풍채가 좋은 사장님은 노모가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해 아직도 이 동네에 산다고 했다. 그 맞은편으로 작은 골목이 있는 데 조금 들어서면 북촌 탁구란 간판이 세워져 있다. 지하에 있는 탁구장이다. 이 탁구장 여자 사장님도 계동의 오랜 주민이다. 탁구대가 두 대 들어간 북촌 탁구장에는 주말이면 가족 손님들이 놀러 와 탁구를 친다. 아이들 방학에 우리 네 식구도 가끔 들른다. 탁구장 벽에는 둘째 딸이 그린 다른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과 함께 붙어 있다.
조금 더 계동길을 오르면 왼쪽으로 제법 큰 편의점이 보이는 데 다른 편의점과는 달리 실내와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다. 고등학교의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이곳에서 라면을 먹고, 낮시간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라면으로 K-푸드를 즐긴다. 저녁에는 가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는 젊은 여행객들을 볼 수도 있다. 이곳의 주인 할머니는 무척 친절하시다. 오늘은 우리 딸이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준다고 컵라면을 잔뜩 사자, 나에게 아이들이 출출할 때 과자부스러기나 빵을 먹이는 것보다는 라면을 하나 먹게 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방법이라며, '너는 아주 현명한 아빠를 두었구나'라고 딸에게 아빠를 칭찬 해 주었다.
길을 계속 걷자. 화덕이 있는 피자집을 지나고 조금 더 걸으면 꽃집이 하나 나온다. 우리 집 행사가 있을 때마다 꽃을 주문하는 집이다. 꽃 집의 젊은 사장은 이제 단골을 알아봐 주는지 특별히 신경 써서 꽃다발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나는 어머니께 드리는 꽃다발을 부탁할 때는 항상 엘레강스하게, 아이들을 마중하러 공항에 갈 때는 화사하게, 마치 요정이 뛰어 놀 듯한 모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만든 꽃다발은 정말 그렇게 보인다 꽃 잘하는 집이다.
꽃 집의 옆에는 전통찻집이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 들어서면 중정이 있는 아주 운치 있는 한옥이다. 그리고 그 앞에 1907년 세워진 계동교회가 서 있다. 이 동네는 교회도 쉬이 100년을 넘어간다. 옆동네 가회동 성당은 1795년 세워진 천주교 성지이다. 윤보선 생가와 마주하는 안동교회도 1909년에 세워졌다. 계동의 중심에 자리한 계동교회는 왠지 이 마을을 동화 속 마을처럼 느껴지게 한다. <빨강 머리 앤>에 나오는 그린 게이블의 교회가 떠오르기도 하고, 왠지 그 안에 <신부님 우리 신부님>(조바니 과레스키) 속에 나오는 깡패 신부 돈 까밀로가 있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교회를 지나면 오랜 시간 자리르 지켜온 짱구식당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면 가끔 들어가 툇마루에 앉아 쉬는 한옥 배렴 가옥이 나온다. 이곳은 동양화가 배렴(1911~1968)이 살았던 주택이라 하는 데 국가 유산으로 등록되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곳이다. 중정에는 멋진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툇마루에 앉아 그 나무를 보며 쉬면 그리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가만히 하늘을 보게 되는 자리이다.
계동길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내일 아침도 일찍 그 길을 걷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