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K-붐의 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젊은 이들이 한국 아이돌의 음악을 듣는다. 한국의 화장품이 전 세계로 팔려가고 라면과 만두, 떡볶이와 김밥, 약과와 바나나 우유가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내가 사는 안국동에서 거리를 걸으면 마치 파리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든다. 인근의 인사동과 북촌 한옥 마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국적도 다양하고 인종도 천차만별이다.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한국을 찾은 사람들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음식과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우리가 남들을 따라 하던 시대를 지나 남들이 우리를 따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달 후쿠오카의 처갓댁에 들렀을 때 장인어른이 넷플릭스에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왔다면서 함께 보자고 하셨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였다.
<흑백요리사>는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의 강력한 관광 콘텐츠가 될 것이다. 한국에 온 관광객들은 흑백 요리사들의 식당을 찾을 것이고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는 이 셰프들의 음식을 먹는 것이 한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될 것이다. 출연진들의 식당은 유명세를 더하였다. 이미 몇 개월 치의 예약이 모두 마쳐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셰프들과 그들의 식당이 해외에서도 인기 몰이를 한다니, 요즘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문득 우려되는 것이 있다.
나는 요즘 우리 동네에서 맛이 변해가는 가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멀쩡하던 맛집이 손님이 넘쳐나니 평범한 맛으로, 그것도 모자라 인스턴트에 가까운 맛으로 변한다. 외국인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동네의 맛집들을 잘도 찾아오고 평범하던 가게도 어느 날 갑자기 긴 대기 줄이 선다. 이렇게 손님들이 몰리는 가게가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정말 많은 가게들이 초심을 잃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가게들은 손님이 몰리면 먼저 가격을 올리고 다음에는 테이블 당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더 비싼 메뉴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조리법을 바꾸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재료의 변경하다 보면 손님들이 가게를 찾게 했던 본래의 맛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한국의 수많은 식당 중에 맛집과 일반적인 식당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이 좋이 한 장을 마치 손님들을 붙잡아 두는 부적처럼 여겼던 식당들은 맛집으로 꼽혔던 차별성을 잃고 그냥 그런 평범한 식당이 되어 버린다. 그 와중에 나아지는 것은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사진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하여 음식의 겉보기가 좋아지는 것뿐이다.
우리 동네에서 자주 다니던 인근의 치킨집은 최근 유명세를 타고 초저녁부터 만석에 줄을 세우더니 급기야는 못 먹어 주는 치킨 맛이 되어버렸다. 치킨과 함께 시그니쳐 메뉴로 꼽히던 골뱅이도 이제 설탕 범벅의 쫄면 위에 듬성듬성 골뱅이가 올라간 싸구려 맛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던 삼계탕 집은 외국 손님이 오면 항상 들르던 단골 코스였다. 이 집은 미어터지는 관광객들로 별관을 만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 이 집을 찾으니 오골계 삼계탕, 산삼 배양근 삼계탕의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비싼 메뉴들이 생겨났다. 정말 가격의 차이만큼 비싼 재료가 들어가는 지를 따지기 전에 기본 메뉴인 삼계탕의 맛이 평균 이하의 맛으로 변해버린 것은 충격이었다. 작고 얇은 해물파전과 말라버린 전기 치킨도 비싼 가격에 비하여 수준 이하였다. 전통의 노포도 돈에 눈이 멀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
사람의 입은 대단하다. 재료가 바뀌고 정성이 빠지면 한 입만 먹어보아도 그 변화를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노포를 애용했던 단골손님들은 오랜 시간 지켜오던 맛이 변하는 것에 아쉽고 섭섭하다. 가게가 번창하여 세대를 이으며 이런 변화는 유독 두드러진다 가게를 열던 창업 세대와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가게를 이어받는 2대 혹은 3대의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같을 수는 없다. 맛과 정성을 중시하던 식당이 효율과 스피드를 앞세운 사업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 동네를 찾는 외국에서 온 손님은 가게 입장에서는 한 번 왔다 가는 어중이떠중이 손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든 간에 식당을 찾은 손님에게 대충 대해도 괜찮은 법은 없다. 손님을 가려 덜 맛있거나 덜 정성스러운 음식을 내어 놓아도 좋은 법도 없다. 어디선가 한국을 대표하는 가게라고 듣고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이런 허접과 바가지는 너무나 창피한 일이다.
내가 식당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리인으로서 프라이드를 가지라고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적어도 손님이 넘쳐나면 맛이 변하고 서비스의 수준이 떨어지는 일이 식당 사업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매일 가던 가게도 어느 날 딱 한 번 맛이 없으면 그 뒤로는 발길을 끊게 된다. 내 돈을 내고 먹는 한 끼의 식사는 누구에게나 하루 중에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탁드린다. 오늘의 맛집들이여 제발 변하지 말자. 가격을 올리더라도 최소한 원래의 맛은 변하지 말자. 그대들의 가게를 찾은 많은 사람의 기대에 배신하지 말고, 제발 쪽팔리지는 말자.
얼마 전에는 일 년 전 즈음 우리 동네에 문을 열었던 도넛 가게가 문을 닫았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다는 도넛 브랜드이고 영화 <아이언맨>에도 나오는 도넛 가게이다. 이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내 주변에 이 가게에 가 보았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였다. 종업원의 쌀쌀맞은 태도, 도넛을 몇 박스를 사도 매장에서 먹으려면 1인 1 음료 주문을 강요하는 완고함, 완벽한 브랜드와 맛있는 도넛을 갖추고도 종업원들의 태도가 손님을 쫒고 가게를 망하게 한 사례이다. 가게의 규칙을 정하고 종업원의 접객 태도를 점검하지 못한 모든 책임은 점주의 몫이다. 그 덕에 그는 많은 돈을 잃었다.
가게를 여는 모든 사람에게 장인 정신이나 서비스 정신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둘을 흉내 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가게에서 발길을 돌린다. 누구나 돈을 벌고 싶지만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면 그 천박함이 사람람들을 쫓아낸다.
(후기)
요즘 요리와 노래 등의 경연 대회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널들의 심사평을 들으며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러한 화법을 주의 깊게 듣게 된다. 좋은 이야기를 할 때도 나쁜 이야기를 할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화법이란 매우 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혹시 몇몇 가게를 이르며 비난조로 말하였다면 용서를 바란다. 유독 요사이 변해가는 식당들을 보며 많이 실망스럽고 조금 화가 났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자기 자신으로 귀결된다. 우선 내가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