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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Oct 20. 2024

강용수 교수 강의 #불안 끝 쇼펜하우어, 절망 끝 니체

20241020 광화문 교보 다산홀

쇼펜하우어는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마흔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적인 사고 능력과 인격이 성숙하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는다고 우리는 점점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쇼펜하우어가 말한 마흔이란 젊음의 혈기왕성함으로 인한 충동들과 감정적인 오류들이 배제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나이일 것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려면 적어도 마흔 살은 되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평범한 인간이더라도 나이의 성숙과 경험의 결실만 있으면 인간으로서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은 나아지기 시작한다.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포레스트북스)


오늘 교보문고에서 개최한 강용수 교수의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이미 200쇄 인쇄를 넘어서고 45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이다. 그의 신작, <불안의 끝에서 쇼펜아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의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비교하여 설명하였던 그의 강연 중 책에 담긴 여러 내용들 이외에 내가 이 강연을 들으며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부분을 이 글에 남기고 싶다.


1. 독창적인 글쓰기 


칸트는 철학(Philosophy)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Philosophizing)을 배우라고 말했다. 이 말은 철학이 학문으로 갇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지만 나같이 게으른 철학과 학생에게는 책을 보고 골치 아픈 공부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자리에서 주담을 즐기는 것이 철학하고 있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애용되었다.


강용수 교수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며 자기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자기 생각대로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 읽은 책이 많이 없으니 누구의 생각을 흉내 내거나 표절의 걱정도 없었단다. 사정이 이러하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일본에 출판되며 매우 독창적인 쇼펜하우어 서적이란 평을 받았다고.


K대학 교수인 강교수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에이, 설마 교수님이 설마'하며 엄청난 겸손의 말로 생각하겠지만, 철학 공부를 조금 해 본 사람은 그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은 방대한 학문이다. 철학은 인류가 가진 모든 학문을 배출한 인류 학문의 본산이다. 마지막으로 미학을 쪼개어 일개의 학문으로 독립시켰다. 인류의 이성적 사고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철학이 시작하되었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셀 수 없는 인간들의 사고의 방식이 철학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철학자는 죽어도 그가 던진 질문, 철학은 영원하다. 철학이란 인간 사고에 한 갈래로 그 정답이 없다. 그러니 철학적 논쟁이란 애초에 끝날 수 없는 논쟁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위대한 질문들과 의견이 철학으로 남아 여전히 논쟁 중이고 지금도 철학자들은 그들만의 질문과 대답으로 새로운 학과 파를 배출해 내고 있다.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도 한 세월이 걸린다. 그러니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철학을 넘본다는 것은 본진을 사수하기 조차 어려운 전투에서 엄하게 전선을 넓히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넓고 깊은 철학이란 학문에서 전공자일수록 더욱더 자기 전공에 편향된 독서를 하게 된다. 니체 전공자인 강교수가 쇼펜하우어에 대해 잘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책을 썼다는 말이 납들이 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라 교수의 잘 모른다는 당연 전공자 수준에서의 모름이다. 선수들을 얕보았다가는 갈비뼈 나간다.     


칸트가 말한 철학을 한다(Philosophizing)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곳에도 끄달리지 않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이성 본연의 힘으로 생각을 밀고 나가 완성시키는 것, 인간 정신이 가진 위대한 능력을 발현하여 나와 우주를 이해하고 연결시키는 것, 상아탑에서 문자에 갇힌 죽은 철학을 해방시켜 인간의 삶 속에 의미 있는 산 철학으로 만드는 그 위대한 작업이 아니던가. 나는 강용수 교수의 말에 글쓰기 방식, 기존에 서적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글을 쓰는 방식에 찬성하며 철학하는 사람으로 응당 그러한 글쓰기로 대중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강교수의 말은 쉽다. 나는 그에게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서로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 두 사람의 형이상학적 전재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삶 속에 무신 그리 중한 물음인가?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적 논쟁을 하나 쓸모없는 일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나와 당신이 이해 못 한다고 하여 양자역학이며 상대성이론이 무용하고 수억 광년 먼 은하를 관찰하는 일이 인간의 사고 놀이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 영역과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연구와는 별도로, 최소한 인문학의 정중앙에 서 있는 철학이란 학문은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더 바람직한 가치의 기준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의무이냐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의무는 아니어도, 최소한 철학의 저변에 인류의 삶에 대한 기여라는 목적이 깔려 있지 않다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철학적 논쟁과 연구는 무용한 사고 놀이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


강용수 교수의 책에서 시작된 서점가의 쇼펜하우어 열풍이 한국의 철학계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의 책처럼 철학은 어렵고 딱딱한 말에서 벗어나 쉽고 친절한 언어로 사람들 곁에 다가서야 한다. 몇몇 사람들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내용이 아닌 감동을 주고 삶에 힘이 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철학이 어떻게 감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냐고? 수많은 오해에 덥힌 철학이란 학문을 변호하자면 철학은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의 떠올린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서너 단계 거치고 논의를 쉽게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개념들을 규정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나타났지만, 차근차근 원류를 따져가면 모두 우리도 떠올렸을 법한 단순하고 쉬운 질문들에서 시작된 생각들이다. 의사들이여 철학자들이여 제발 전문용어를 남발하지 말라.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들도 제대로 이해하고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3.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자.


오늘의 강의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그들이 절망과 불안에 대하여 제시한 방법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비관론자, 허무주의자로 대변되는 두 철학자를 이야기하며 정작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삶의 희망이고 용기이다. 세상이 그럴 수 도 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실패하여도 모두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니 힘을 내자.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세 가지로 말했다. 무언가를 실행하는 용기, 현실과 결과를 결정하는 운과 운명,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지혜, 곧 현명함이다. 인생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 자기가 예측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그 결과를 가르는 데는 무엇보다 운이 큰 역할을 한다. 어떤 때는 힘들이지 않아도 성공을 한다. 순풍이 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은커녕 힘만 든다. 역풍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역풍이 불 때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어 바람을 순풍으로 만들고 순풍이 불 때 더 노력하여 더 큰 결실을 만드는 것이 지혜이다. 그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결국 많은 역경의 경험 속에서 얻어진다. 그러니 그 지혜를 얻을 때까지 역경을 하나의 지혜를 얻는 기회라 여기고 끊임없이 시도하여야 한다.


저자는 철학이란 대학에서 철학이란 학문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에서 외면받는 철학이란 학문을 지속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에서 조금 방향을 바꾸니 아주 큰 순풍을 탔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솔직한 고백이고 귀감을 주는 말이다. 조금씩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것이 힌트가 될 수 있다.


4. 기억에 남는 질문과 대답 


강의 후 한 사람이 질문했다. 순풍과 역풍을 말씀하셨는 데 지금 역풍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저자는 대답은 의외였다. 지금 역풍을 맞고 계시다면 더 역풍을 맞으세요. 사람에게는 힘듦을 느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에 닿으면 튀어 오르는 생각이 나오고 기회가 옵니다. 어쩌면 쇼펜하우어 와 니체 같은 화법인지도 모른다. 야들야들하고 빤한 위로가 위기를 건너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수영장에 빠지면 바닥을 차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교수님은 언제가 순풍과 역풍의 전환점이셨는지요? 네 저에게도 저의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한 분 계셨어요. 살사를 아주 잘 추던 형님이셨지요 그런데 그 형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어요. 내가 장례식에서 발인을 할 때 그 형님의 관을 들었는 데 그때 관이 너무 가벼웠던 거예요. 그 형님의 관을 들 때, 그 가벼움을 느꼈을 때, 내가 그동안 중요한 것들이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또 그러고 나니 내 인생의 바람이 바뀌었어요. 역풍에서 순풍으로.



인생에 자기 보다 중한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누르는 많은 것들을 조금 더 가볍게 보아도 괜찮다.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으니 좀 쉬어 가도 좋다.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고 내게 순풍이 오는 때를 기다리라는 신호이니 이 또한 좌절할 일이 아니다. 가만히 강연을 돌이키니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은 다소 피곤한 일이나 그것이 건강한 고민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날이 쌀쌀해졌다. 철학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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