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마지막 날, 전시와 미팅을 마치고 호치민 구시가지에 들렸다. 업무적으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으니 홀가분한 기분이다. 숙제를 마치고 노는 기분이랄까?
구시가지 중심에는 호치민 시청이 있다. 유럽풍 궁전처럼 지어진 호치민 시청은 낮고 길게 펼쳐져 고급스러운 모양새이다. 프랑스 강점기에 세워진 건물이다. 시청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펼쳐진다. 호치민 광장이다. 광장의 양 옆에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지나고 상가와 식당들이 길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다. 광화문 광장의 축소판 같은 모양이다.
호치민 광장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 대신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 통일을 이끈 호치민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도시의 이름을 사이공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바꾼 사람의 동상 치고는 꽤나 아담하다. 높은 단상 위에 서 있는 호치민은 한 손을 올려 ‘어이’ 하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나누는 표정이다. 지금과 같이 11월에도 반팔 반바지가 어울리는 더운 나라에서 호치민이 입고 있는 긴소매에 목까지 단추를 채운 인민복은 왠지 현실감이 떨어진다. 에어컨이라도 틀고 있었다는 말인가.
프랑스 강점기에 세워진 시청 앞에, 미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을 적화 통일한 호치민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겹겹이 쌓인 역사의 흔적 위에 현재의 베트남의 모습이 어우러진 장소이다. 지금 베트남은 프랑스말을 쓰지 않고 배급도 실시하지도 않는다. 역사의 변화란 당시의 시점으로는 예측하기 힘든 법이다.
시청의 담벼락을 따라 걷다 맞은편 건물 이층에 자리한 콩카페로 들어갔다. 콩카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꼭 가 봐야 하는’ 카페라고 한다. 일층 입구에서 계단까지의 복도 양 벽에는 수백 장의 그림들이 천장까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한 켠에는 한 화가가 핸드폰 속 사진을 보며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작에 붙은 모닥불의 그림이다. 오랜 세월에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된 대리석 계단을 올랐다.
카페 안에는 오밀조밀하게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유럽풍 건물과 테라스에 아시아적이 소품들이 섞여 있다. 오래전 어느 시기의 베트남이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낮은 의자가 놓인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쇠로 만든 깃발 모양의 번호표를 받았다. 15번이다.
콩카페의 대표 메뉴는 코코넛 밀크 샤베트가 올려진 커피와 피넛 버터가 들어간 짭조름한 커피이다. 낮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커피를 마시며 뜨거운 크로와상을 연유에 찍어 먹었다. 명불허전이다. 베트남의 빵이 맛있는 이유는 프랑스의 영향 때문이라 한다. 베트남의 대표 음식인 반미가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인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로부스타 커피의 주요 산지이다. 브라질이나 콜롬비아에서 많이 나는 아라비카 커피에 비하여 로브스타 커피는 진하고 쓴 맛이 강하다. 로브스타가 이전에는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는 데 최근에는 로부스타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는 사람도 늘어나 고급화되는 추세이라고 한다. 연유에 진한 커피를 타먹는 베트남식 커피는 이런 로브스타 커피의 강한 맛을 부드럽게 즐기기기 위한 방법이다.
인터넷을 살피니 콩카페는 한국에도 여러 지점이 들어와 있다. 내가 만약 한국에 있는 콩카페를 간다면 진위와 무관하게 ‘호치민의 콩카페에서 마신 커피 맛과 약 17% 정도 다르다’라고 허세를 떨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커피의 맛은 분위기가 좌우한다. 호치민의 콩카페의 커피맛은 호치민만의 것이다. 나는 호치민 출장을 기념하려 콩카페의 시그니쳐 굿즈(goods) 중 하나인 군청색 에코백을 하나 샀다. 공산당의 냄새가 확 풍기는 색깔이다. 한국에서 들고 다닐 때 이 때문에 시비 거는 이가 없으면 좋겠다.
카페를 나오니 어느새 해가 졌다. 차도에는 수많은 오토바이의 불빛이 각자의 속도로 지나갔다. 처음 만나는 젊은 남녀가 어설프게 서로 말을 섞는 모습도 보인다. 호치민 오페라 하우스로 가는 길에 가게들이 줄 지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책방이 모여 있는 골목이었다. 골목 양 옆으로 서점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 길 위에 넓고 기다란 매대를 설치하여 책들을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읽지 못하는 책은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읽지 못하는 책과 읽지 않는 책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의 서재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주말이면 서점에서 헤매다가 결국 안 읽을 책을 사 들고 나온다. 그러니 나의 취미는 독서라기보다는 책수집이라 해야 마땅하다. 나는 책수집가답게 호치민 방문을 기념하는 책을 한 권 사기로 했다. 다행히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 영어책방이 나타났다.
나는 책을 고르다가 문득 오래전 읽었던 탓닉한 스님의 책이 떠올랐다. 점원에게 스님의 책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니 스님의 책들이 있는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십여 년 전에 읽었던 <화(Anger)>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베트남의 노승인 탓닉한 스님을 한국에서 유명하게 만든 책이다. 내가 못된 성격으로 스스로 괴로워하던 시기에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주머니 속 베트남 지폐들을 책 <Anger> 사이에 넣어 들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 대학을 간 한 써클 선배가 우리들에게 ‘책 속에 돈이 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살아보니 공부는 돈이 된다.
베트남은 화폐 단위는 ‘동’인데 만(10,000) 동이 한국돈 500원이 채 안된다. 그러니 2,000원짜리 음료수 하나에 표시된 가격은 37,000동이나 되는 샘이다. 베트남 물가는 한국에 비하여 무척 싸다. 동일한 공산품의 가격도 한국의 절반 정도이고 식대는 좋은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고도 싸게 먹었다고 느끼는 정도이다.
호치민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유명하다는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갔다. 좁은 골목 사이로 들어가니 넓은 장소가 나오며 그 안에 여러 식당이 모여 있었다. 식당 앞에는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 국적도 인종도 다양하니 그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나라의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
야채와 함께 나오는 고기 꼬치 세트와 코코넛 껍데기 안에 담겨 나오는 새우 볶음밥, 공심초 볶음, 레몬글라스가 들어간 닭고기 조림 등을 주문했다. 모자람 없는 맛이다. 마지막 밤이니 한식당에 가지 않고 현지의 음식점을 찾은 것은 잘한 일이다. 배가 불러 더 이상 굴러 다닐 수 없어 동남아의 우버(Uber)인 그렙(Grab)으로 차를 불러 호텔로 돌아왔다.
호치민 출장의 마지막 밤이 지났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이제 겨울이 찾아온 나의 고향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