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호 Dec 05. 2024

리듬감 있는 하루

일상 속에서 재미를 챙기자

아침이 춥다. 많이 생각하면 안 된다.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바로 침대를 벗어나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체육관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면 러닝머신 위에서 잠시 걷는 것만으로 하루를 잘 시작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30분만 빠르게 걷다가 스트레칭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배고픈 운전기사가 기사식당에 들어가듯 빠른 걸음으로 샤워장으로 간다. 훌렁훌렁 체육관 로고가 새겨진 체육복을 벗어던지고 따순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하고 뜨신 물에 입수한다. 아, 겨울에는 이 맛이 최고다.


열탕의 몸을 담그면 피부가 지끈지끈거리다가 어느 순간 힘이 휴-하고 풀리며 심신이 모두 편안해진다. 어릴 적 이런 농담이 있었다. 한 꼬마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 꼬마의 아버지가 열탕에 들어가 '어이 시원하다'라고 말하니 아이는 정말 시원한 물이라 생각하고 열탕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뜨거운 물에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며 꼬마 왈, '정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뜨거운 탕이 시원해진지도 한참이 되었다. 꼬맹아, 너는 속은 것이 아니고 아직 모르는 것이란다.


오늘은 할 일이 많은 날이다. 일곱 시 즈음 사무실에 도착하여 컴퓨터를 열고 당장 급한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아무리 급해도 일상의 리듬을 지켜야 한다. 서두르면 오래 못 간다. 나는 방금 사 온 커피를 마시며 막 우편함에서 꺼내온 신문을 펼쳤다. 바쁜 티를 내지 않고 여유롭게 아침 루틴을 즐기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음악을 트는 것을 빼먹었다. 할 일을 쌓아두니 마음 한 켠이 바쁘고, 뭣을 싸고 뭣을 닦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다. 나는 '이럴 바에야' 하며 신문을 접고 컴퓨터를 켜 이메일들을 확인했다.


바쁘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쁘다는 것이 반드시 의미가 있거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을 세어 서랍에 보관하는 사업가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일에 빠져서 바쁘게 살다 한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자기 바람과는 무관하게 호구지책으로 바쁘게 지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쁘다는 것 자체는 우리에게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왜 바쁜지 잘 살펴야 하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그저 바쁘기만 하다.


여러 가지 일들로 꽉꽉 채워진 하루였다. 화이트보드에 할 일들을 나열해 놓고 하나씩 지워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진짜의 나보다 더 친절한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해외로 보내는 샘플들을 포장하며 선물 가게의 점원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밋밋한 포장을 더 깔끔하게 포장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재미이다. 사람들을 만나며 표정과 인상으로 어떤 사람일지 짐작해 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의 성격을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매번 하는 회사와 제품을 설명을 조금씩 다르게 해 보고 가끔 새롭고 참신한 표현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나다.


나는 일과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최대한 재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되도록이면 즐겁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려 한다.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는 것이 손해보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쓰고 억지로 하면 오래 하지 못하는 것처럼 재미가 없어도 이내 멈추어 서게 된다. 진인사 대천명, 열심히 하고 결과는 하늘이 준다고? 열심히 시간을 갈아 넣어 결과에 억울하지 않으려면 과정의 재미를 발견해야 한다. 기왕이면 아닌가. 숨 막히는 심각함 대신 경쾌한 라틴 음악에 몸을 맡기자.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는 지금 충분히 재미있게 살고 있는가? (네! 아주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