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다. 나는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기 위해 부산으로 여행을 왔다. 기장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호텔에 묵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라운지에는 아주 넓은 서점이 있다.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부산으로 향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7시 반 부산행 열차를 고수했다. 누가 무어라 하여도 나의 생일 여행이다. 전날 밤까지 부산여행에 신나 했던 두 딸과 와이프도 이른 기상 시간에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자 자 빨리들 움직이자고. 벽돌을 나르는 공사판의 십장처럼 어르고 달래며 집을 나섰다.
부평 깡통시장은 일요일에도 많은 집들이 문을 열어 생기가 돌았다. 먹을 것이 많은 곳으로 여행을 오면 매끼의 선택이 소중하다. 로마의 귀족들이 산해 진미를 차려 놓고 입에 넣어 맛만 보고 뱉어 가며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맛보았다는 말이 참말일지도 모른다. 좌판에 늘어놓은 여러 색의 떡들과 닭강정, 어묵들과 족발의 유혹을 이기고 깡통시장을 벗어났다. 여기서 배를 채우면 더 이상 전진의 동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부산영화제 거리의 먹자골목에서 이 동네 명물인 씨앗 호떡을 하나 먹고 전철을 탔다.
서면에서 돼지국밥을 먹을지, 떡볶이를 먹을지를 두고 마지막 격론이 있었지만 두 딸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분식집에 앉았다. 지난여름 와서 벽에 적어 놓은 우리 이름이 아직도 적혀있다. 나는 그 밑에 날짜를 하나 더 추가하였다. 김밥, 꼬마김밥, 튀김과 떡볶이를 배부르게 먹고 계산을 하는 데 사장님이 '항상 오셔서 많이 드시고 계산도 현찰로 해주시니 고마워서'라며 값을 깎아 주셨다. 나는 이 가게가 두 번째이고 이전 여름에 왔을 때는 카드로 계산하였으니, 가게 사장님은 사람을 헷갈리셨거나 아니면 인심이 아주 후하신 분이다.
택시를 타고 기장에 있는 호텔로 왔다. 아이들이 크며 식비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비행기 값이 성인요금으로 바뀌고 먹는 양에 비해 크게 저렴하다고 여겼던 뷔페의 가격도 오른다. 네 식구가 여행을 가면 이제는 방을 두 개를 잡아야 한다. 다행히 나란히 붙어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방 안에 들어서니 탁 트인 창으로 바다가 내려 보이고 바다를 보며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도 놓여있다. 이 호텔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꽤나 높았는 데 이를 충족하고 남을 시설이었다. 제이타쿠(贅沢, zeitaku)라는 일본어가 떠올랐다. 일상 속에서 소소한 사치를 의미한다. 3주 전 당일치기 여행으로 이곳을 들렀다가 충동적으로 예약을 한 나의 선택을 스스로 치하했다.
욕조에 뜨신 물을 담아 몸을 담그고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다 위의 일출은 언제나 장관이다. 때마침 나의 생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