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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이 시작되었다.

20250101-01

by 박종호

2025년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북악산에서 뜨는 해를 보려 오르려 집을 나섰지만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동네를 걸었다. 코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계동길은 조용하다. 문 닫은 가게의 조명이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계동길을 끝까지 오르면 중앙고등학교 정문이 나온다.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창덕궁 담벼락을 따라 자리한 원서동이다. 궁의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이 담벼락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서서 이곳과 저 너머를 가른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는 마치 담벼락이 이곳과 저곳을 나누 듯 무언가 확연히 바뀌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작 해를 바꾸는 것은 그저 인간의 관념 속의 일이요, 바뀔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 가짐밖에 없다.


굳이 언제나 하여도 될 시작을 미루고 미루다 새해에 시작한다. 자기를 돌아보고, 마음을 먹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계기로서의 새해는 무척이나 유용하다. 올해는 책을 조금 더 많이 읽고, 틈틈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금 더 몸을 움직이고 조금 더 남들에게 친절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시기에는 좀체 안 하던 반성도 하고 워낙 많던 욕심에 별별 욕심들을 더한다.


산책을 마치고 딸들에게 보내는 새해맞이 편지를 썼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두 아이에게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읽어 주었다. 택시 안에서, 빈 시간을 메우는 카페에 앉아 지난달 큰 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모두 읽었다. 저녁에 집에 오니 텔레비전에서 한강 작가의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식사 자리에서 마시다가 남기어 들고 돌아온 와인을 한 잔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새해 첫날부터 만취할까 두려워 그만두었다.


2025년이 시작되었다. 설레고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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