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대한 기억
3주 만에 나는 다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일요일 하행선에는, 아니 (상하를 없애자고!) 부산 가는 기차는 빈자리가 많다. KTX 011편은 차량의 절반 정도가 역방향으로 놓여 있다. 기차가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앉는 좌석이다. 역방향 좌석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 아닌 모양이다. 온라인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며 좌석을 지정하려 하면 항상 순방향 좌석이 먼저 모두 찬 후에 역방향 좌석이 팔리기 시작한다. 만약에 모든 좌석을 한 방향으로만 놓는다면 기차가 유턴하지 않는 이상 돌아올 때는 순방향이었던 좌석이 모두 역방향이 된다. 순역 반반 차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전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주제가
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은하철도는 굳이 순방향, 역방향으로 의자를 나누어 놓을 필요가 없다. 굳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철로를 벗어나 드넓은 우주의 어느 방향으로 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건너는 은하철도 안에는 장거리 승객을 위한 객실형 좌석도 구비되어 있다. 의자가 서로 마주 보는 모양새이다. 해리포터가 킹스크로스역에서 호그와트로 갈 때 탔던 급행열차에도 이런 모양의 객실이 있었다. 해리포터는 이 열차 안에서 시리즈의 또 한 명의 주역인 론 위즐리를 만난다.
어릴 적 유럽을 배낭 여행할 때는 일부러 밤기차를 골라 타며 도시 사이를 이동했다. 당시의 유럽의 기차는 객실로 되어 있었는 데 유레일패스는 기간 동안에 몇 번이고 기차를 탈 수 있으니 기차 안에서 잠을 자면 이동하여 시간도 아끼고 호텔 값도 아낄 수 있었다. 다만 기차 안에는 이렇게 잠이 든 승객들의 배낭을 훔치거나 그 안의 귀중품을 터는 전문 털이범들이 있었는 데, 여행에 지쳐 깊이 잠든 사이에 도선생을 만나 도착지에 무일품으로 기차를 내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여행사에서는 여권과 현금을 넣은 복대에 넣어 항상 차고 다닐 것을 추천했다.
중국에서는 동북지방 도시인 장춘에서 상해까지 31시간을 침대칸, 워푸를 타고 이동한 적이 있다. 중국에 고속열차가 놓이기 전의 일이다. 긴 복도를 따라 문이 없는 객실들이 있고 객실의 양 벽에는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좁은 침대가 세 개씩 삼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침대와 침대 사이의 높이는 제대로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낮아 사람들은 잘 때가 아니면 특별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맨 아래 침대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말 그대로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통성명도 하고 가지고 탄 해바라기씨도 나누어 먹으며 말동무가 되기도 하였다. 그 시절의 중국은 그런 정과 멋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텐트를 메고 친구 하나와 무전여행을 떠났다. 우리 둘은 '무전여행'이라고 멋있게 이름을 붙였지만 정말 돈이 없이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되는 대로 취식을 하고 산에 들어가 텐트도 쳤다. 절밥도 얻어먹으며 특별한 계획 없이 기차를 타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젊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주로 기차를 타고 움직였다.
기차는 여러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생소한 무궁화, 새마을 열차를 타면 길지 않은 거리에도 옆에 앉은 혹은 주변의 사람들과 쉽게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오래된 열차는 덜컹거리고 시끄러웠다. 소음 속에 들리는 그들의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무엇이 그렇게 알고 싶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세상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알고 싶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했던 여행의 막바지.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만석의 기차 안은 여행 중에 지방 도시를 오가는 기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에서 떠나는 기차 안에서 느껴지던 설렘과 여유 대신에 묘한 긴장감과 함께 적막이 흘렀다. 코 베어간다는 서울로 가는 차에 탄 사람들은 여차하면 자기 코라도 내어줄 각오로 상경한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그 기차 속에서 느꼈던 도시의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차를 타면 아직도 기차를 타고 여러 곳으로 향하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