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한 골목에 있는 치토란 이름의 레스토랑,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
오하시(大橋)는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작은 동네다. 오하시역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치토’라는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치토(CHITO)’는 햄버그가 간판 메뉴인 경양식 레스토랑이다. 이 가게에서 나의 아내는 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가게의 단골 손님들과 그간 거쳐간 역대 알바생들을 꾀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때도 마치 집처럼 편하게 가게를 드나들었다. 우리가 오하시에 살게 되었다면 어쩌면 나는 햄버그를 굽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한국어 회사를 다니게 되며 우리는 한국으로 왔고 세월과 함께 ‘치토’를 찾는 일도 점점 뜸하게 되었다.
마스터와 이즈미상 부부는 ‘치토’를 20년이 넘게 운영했다. 젊은 시절 마스터는 동경에서 법대를 졸업한 후 잠시 회사원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곱슬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커다란 불 판 위의 햄버그를 뒤집고 있는 마스터를 보면 그가 셀러리맨 생활을 길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지만, 그가 결국 맘에 안 드는 상사를 흠씬 패 주고 회사를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단단한 팔뚝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사실 그의 팔뚝은 그가 가게의 손님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아 격주로 한번씩 개최하는 테니스 시합의 덕이 크다. 그는 매일 밤 집에 돌아가면 잠들기 전에 복근운동과 팔굽혀펴기를 하고 잠이 든다고 한다. 지금도 여차하면 마음에 안 드는 젊은 놈 하나쯤은 때려 눕힐 기세이다.
마스터는 주방에서 요리를 맡고 이즈미상은 홀에서 상차림과 서빙을 맡는다. 동경 출신인 이즈미 상은 상사에 다니는 아버지 덕에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마스터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삼촌이 운영하는 동경의 한 레스토랑에 요리를 배우러 들어갔을 때 이즈미상은 그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잘 길들여진 일본의 남자들이 심심하게 느껴졌던 이즈미상에게 반항기 넘치는 곱슬머리 젊은이는 영화 브레이브하트에 나오는 멜깁슨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곧 결혼을 결심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마스터의 부모님은 두 사람의 결혼을 결사코 반대하였단다. 하지만 사랑에 눈 멀어 어차피 부모의 동의 따위는 그다지 신경도 안 썼을 두 사람은 그 길로 도망 가 저희들끼리 살림을 차렸다.
마스터와 이즈미상이 도둑 살림을 차린 후, 후쿠오카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식당을 하고 있던 마스터의 어머니와 합류하게 될 때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구체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지만, 젊은 부부는 저희들의 힘으로 살림을 꾸려 가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였을 것이고, 그도 저도 안되면 넘치는 사랑을 뜯어먹고 살았으리라. 아무튼 몇 년 후 마스터의 어머니는 마스터와 이즈미상을 후쿠오카로 불러들였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식당을 이어줄 후계자가 필요하였었는 지는 확실치 않다. 젊은 부부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일식 식당을 이어받아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바꾸었고, 20여년전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옮기며 그들이 기르던 고양이의 이름을 따 가게에 ‘치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점심 영업이 끝나면 저녁 영업시간 시작 전까지 일본의 여느 가게들처럼 ‘치토’도 가게문을 닫는다. 휴식시간이다. 마스터는 바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본다. 신문을 다 보고 나면 테이블 의자 몇 개를 길게 이어 붙여 그 위에 누워 낮잠을 잘 것이다. 이즈미상은 그와 멀찌감치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잠시 후 미코가 문 밖에 나타난다. 미코는 검정 고양이이다. 그녀는 이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이즈미상의 간식을 기다린다. 간혹 이즈미상의 마중이 굼뜨다 싶으면 미코는 “니야옹”하고 헛기침을 하여 자신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기도 한다. ‘치토’의 일상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같은 연극을 수십년 반복해 온 배우들처럼 등장인물들의 동선은 매 순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곳의 오늘은 늘 어제와 같고 그 다음날도 그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몇 해전 마스터와 이즈미상이 가게를 넘기고 오하시를 떠났다. 나이 탓이라고는 하였지만 30년이 거의 다 되도록 매일 같은 배역을 맡았으니 이제 다른 배역을 시도해 보고 싶은 바램도 있었으리라. 부부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후쿠오카로 돌아왔고 아주 오랜만에 ‘치토’에 들렸다. 고동색 마룻바닥, 나무로 만든 네모난 테이블, 체크 무늬 테이블보, 카운터 위의 놓인 사이폰 커피 추출기… 낯익은 모습니다. 메뉴판에도 마스터가 굽던 ‘치토 햄버그’와 이즈미상의 ‘치토 스프’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치토’는 예전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날 이후 다시는 ‘치토’에 가지 못했다. 이 날 보이지 않던 미코를 한 번 더 기다려 보고도 싶었지만, 이즈미상이 항상 서 있던 카운터 너머를 흘끔흘끔 바라보던 아내의 쓸쓸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