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에서

@후쿠오카 모모치하마

by 박종호

3년 전 큰 딸아이의 학교를 옮기기 위하여 이 동네에서 살 집을 찾고 있을 때 부동산에서 이 집을 소개받고는 마음에 들어 그 날로 덜컥 이사를 결정했다. 건물의 앞뒤가 탁 트여 남쪽으로는 산을, 북쪽으로는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마음에 들었으면 낮은 금리에 30년 상환으로 융자를 해 준다고 하기에 이 집을 사려고까지 하였을까?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지 않으면 융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집 마련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아침마다 해변에서 해 뜨는 모습을, 저녁이면 바다 너머로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이 집은 여전히 나의 드림하우스이다.


포털 사이트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알려준다. 오늘 해 뜨는 시각은 5시 53분이다. 아직 두 시간도 더 남았다. 요즘 같으면 다섯 시 반 즈음에 집을 나서는 것이 적당하다. 5분쯤 걸으면 바닷가에 도착하는 데 대문을 나서기 전에 어둑했던 하늘이 바닷가에 도착하면 어느새 파랗게 변해 있고 해가 떠오르기 전의 동녘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방파제 위에 자리를 잡고 새벽부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재택근무로 번 출근 시간에 낚시라는 취미를 발견한 이도 있을 것이고 직장을 잃고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잊고 지내던 ‘손맛’을 되찾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 노인은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아주 길고 투박한 낚싯대를 서너 개씩 드리우고 앉아있다. 아마도 그는 이 자리에서 수 십 년간 물고기를 낚았으리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본다. 그가 낚은 생선들은 싱싱한 횟감으로 동네 슈퍼 마켓으로 팔리어 그중 몇몇은 우리 집 식탁에도 올라오지 않았을까? 역시 마음대로의 생각이다. 매일 마주치는 어떤 이는 사무직에 어울릴 법한(?) 얼굴을 지녔다. 그는 어쩌면 일본의 낚시 영화 시리즈 <낚시 바보 일지>의 주인공처럼 낚시에 미쳐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낚시를 하러 나오는 회사원일지도 모른다. 한 노인은 항상 무릎 아래까지 오는 헐렁한 유니클로 칠부바지에 크록스 신발을 신고 낚시를 하러 나온다. 이 노인은 얼뜻 보아도 느껴질 만큼 부티가 흐르는 얼굴을 지녔다. 그 또한 <낚시 바보 일지>에 등장하는 낚시광인 대기업의 회장님일지도 모른다. 이 두 사람이 같은 회사에 다닐 확률은 극히 드물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여도 낚시광이란 이유로 회장과 사원이 막역한 사이가 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해는 항상 같은 방향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분을 지나면 슬금슬금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어 여름에는 북동쪽에서, 추분을 지나면 점점 남쪽으로 움직여 겨울에는 남동쪽에서 해가 뜬다고 한다. 어제 새벽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동녘의 구름 위로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해 뜨는 자리가 성큼 달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매일 아침 해 뜨는 모습을 보러 나오기 시작한 지도 반년이 훌쩍 넘어간다. 문득 ‘같은 자리에 서서 나는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해 뜨는 모습만 보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신선놀음을 하다가 썩은 도끼 자루를 발견한 나무꾼처럼 지나온 시간이 괜스레 아깝게 느껴져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의 시간으로 지나간 시간 속에 사라진 값을 조금이라도 더 쳐서 받으려는 욕심에 느슨하게 흐르는 나의 하루를, 퍼져 있는 나의 몸을, 졸고 있는 나의 정신을 돌아보았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도 스스로를 심하게 다그치지 못한다. 맛난 음식을 더 먹지 못하여 심술이 났는지 불쑥 나온 나의 배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괜찮아,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역시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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