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앗아간 일본 게그계의 전설

시무라켄

by 박종호

i.


‘어제 오후 학교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주의를 부탁합니다.’


아이들의 통학길 혹은 학교 주변에 ‘수상한 사람(不審者)’이 나타나면 이메일이나 휴대폰을 통하여 학부모들의 주위를 환기하는 소위 ‘불심자 정보’라는 메세지가 도착한다. 지역 커뮤너티가 잘 발달된 일본 사회의 일면이고,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싸이코패스에 의한 무차별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그 동안 일본 각지에 수상한 사람들이 돌아 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부는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여 이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그 사이 이 수상한 자들에 의한 피해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피해자의 증가 속도로 보아 소문 속의 ‘수상한 자들’은 그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음이 확실했지만 그러는 중에도 왠일인지 정부는 이 수상한 자들의 존재를 정확히 알리거나 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마도 나라의 큰 잔치를 앞두고 판을 깨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부는 이 자들이 스스로 광기를 멈추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지난 새벽 그 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의 정문을 걸어 들어와 경비실 앞을 유유히 지나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우리들의 집 현관 앞에까지 올라왔다. 모두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현관문을 서너번 세차게 내려치고는 ‘다행히도’ 굳게 잠긴 문고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쾅쾅쾅. 찰칵찰칵. 철문을 부서져라 내려치는 소리와 잠겨 있는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그 자’가 자신의 문 밖에 있음을 직감했고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입자의 소란스러운 소리는 그의 모습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소문으로 듣던 ‘그들’이 문 밖을 활보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이 자기 집 앞에까지 와 있음을 알아 차렸다. 사람들은 이 수상한 자들을 ‘신카타(신형) 코로나 우이루스(바이러스의 일본 발음)’ 혹은 ‘코비드(COVID)’라는 불렀다.


ii.


일본 정부가 그제 2020 동경 올림픽의 연기를 발표하며 그간 소문만 무성하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국적 확산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에 나섰다. 의사협회는 폭발적인 확산(‘오버 슈팅’)이 우려된다며 곧 비상사태 선언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기자 회견을 했다. 이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이미 오래전 진작에 나섰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라 잔치에 찬물을 끼얹은 주범이 될 것인지, 무책임하고 무능한 의사가 될 것인지의 선택지 중 후자를 택했다. 그것이 그들의 밥그릇을 지키는 데 더 실리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검사의 확대와 함께 확진자 수가 급증하였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지금 발표되는 숫자는 여전히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동경 도지사는 기자 회견을 통하여 최대한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술자리와 접객업소를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하여 술자리와 회식 등을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라인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하여 동경 등의 대도시에 ‘도시 봉쇄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루머가 돌자 다시 슈퍼마켓의 물건들이 동이 났고 정부는 공식 성명을 통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판세와 경향이 바뀌는 것을 두고 ‘바람이 바뀌었다’는 표현을 쓴다. 올림픽의 연기 발표와 동시에 일본 내의 코로나 정국의 ‘바람이 바뀌었다.’ 정부는 사후약방문 격으로 이러저러한 조치들을 꺼내어 놓고 동시에 국민들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에게 코로나 19가 자신들의 코 앞에 닥쳐있음을 느끼게 한 것은 지난 밤 유명 코메디언 시무라 켄이 코로나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이다.(향년 70세). 이제 정말 바람이 바뀌었다.


iii.



2012년 어느 날, 나는 마에상과 함께 상해 푸동 공항에서 탑승구 의자에 앉아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막 회사를 만들어 별 소득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날은 일본측 사업 파트너였던 마에상과 닝보의 봉제 공장을 들렀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존상(마에상은 나를 ‘John씨’라 부른다),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뭔데요?”

“‘헨나 오지상(이상한 아저씨)’, 알아?”

“네? 뭐요?”

“이거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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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상이 헨드폰을 건내며 보여준 영상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메디 캐릭터 ‘헨나 오지상’의 영상이었다. 우리로 치면 <유머1번지>와 비슷한 코메디 프로그램 <시무라켄의 괜찮아(志村けんのだいじょうぶだぁ), 후지테레비(1987~1993)> 안에 나왔던 코너다. 이 코너는 아저씨들의 유치한 상상들을 소재로한 꽁트로, 이 이상한 아저씨, ‘헨나 오지상‘이 여자들이 사는 곳에 숨어 들어 슬금슬금 몸에 손을 데는 내용이다. 이 꽁트는 항상 “네, 제가 이상한 아저씨입니다.”라며 ‘헨나 오지상’ 특유의 춤을 추다 마지막에 그 유명한 ‘아잉~포즈’를 클로즈업 하며 끝을 맺는다. 그 후에 한동안 유튜브에서 ‘헨나 오지상’의 영상을 찾아 낄낄 거리면서 그 춤을 연습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전국민이 이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궁금한 분은 한 번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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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까지도 매주 토요일 7시면 빠지지 않고 보았던 <천재! 시무라 동물원(天才! 志村どうぶつ園), 니혼테레비,(2004~)>은 시무라 켄이 동물원장으로 출연하여 게스트들과 함께 진행하는, 우리의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시무라 동물원의 원장 시무라씨가 ‘헨나 오지상‘이었다는 사실은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다. 원숭이랑 놀아 주는 인자한 노인 시무라 원장이 설마 그 ‘변태 아저씨’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배역에 따라 자기의 바꾸는 것이 배우의 사명이라면 시무라 켄은 정말 대단한 배우이다. (註1)


iv.


어제부터 뉴스에서는 시무라 켄의 사망 소식을 연이어 톱뉴스로 전하고 있다. 50년간의 이어온 그의 연기 생활을 기념하는 스페셜 프로그램도 줄을 잇는다. 워낙 술을 좋아하여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 바로 방송국으로 나오는 일도 많았고 4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3갑의 담배를 피던 애연가였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일본에서 일흔 살이란 아직도 한참 정정할 나이이고 그가 직전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것을 생각하면 일본인들에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티비 속의 시무라 켄을 보며 자라고 늙어 온 일본인들에게 그를 앗아간 코비드가 더욱 원망스러우며 동시에 두려워지는 이유이다.( 註2)


늘 우리 가족의 토요일 저녁 시간을 즐겁게 해 주던 시무라 동물원의 원장, ‘헨나 오지상’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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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동물 농장>의 진행자가 야한 농담(섹드립)으로 유명한 신동엽이니 <동물 농장>과 <시무라 동물원>은 프로그램 내용 뿐 아니라 진행자의 야한 ‘게그 성향’까지도 꼭 닮았다.


<註2> 시무라 켄(志村けん, 1950~2020)은 일본 연애인 중 ‘빅3‘라 불리우는 타모리(모리타 카즈요시,1945~ ), 아카시야 삼마(1955~), 키다노(비토) 다케시(1947~)와 함께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던 연애인이었으며 이들처럼 최근까지도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자신이 좋아하는 연애인에 대한 오래고 꾸준한 팬심(연애인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이 글은 2020년 4월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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