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의 기억

명지휘자 오자와세이지(小澤 征爾)를 아시는지요?

by 박종호

오자와 세이지는1935년 지금의 심양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홉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던 그는 고등학교 때 미식 축구를 하다 손가락이 부러져 한동안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바람에 지휘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카라얀에게 사사를 받았고 그 유명한 번스타인에게 픽업되어 뉴욕 필의 부지휘자를 맡았다. 1973년, 서른 여덟 살 오자와 세이지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를 맡게 되었고2002년까지 29년간이라는 최장기간 수석 지휘자라는 기록을 남기고 보스턴을 떠났다.


2001년 겨울 어느 날, 케이코는 나에게 오자와 세이지의 콘서트를 함께 보러 가자 하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케이코는 무대 공포증 때문에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피아노가 아닌’ 무엇을 찾아 유학 온 일본인 여자였다. 그날 콘서트는 오자와 세이지가 빈오페라로 떠나기 전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콘서트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마에스트로를 만나기 위하여 지휘자실 앞으로 모여들었다. 일본인이 많았다. 여자들은 대부분 기모노를 입었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려 그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방금 본 콘서트에 대하여 상투적이지만 진심이 담긴 찬사를 보냈고 그는 내 노트에 사인을 해주고는 환하게 웃었다. 천재들만의 독특한 천진함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목에 메고 있던 수동카메라를 옆에 있던 일본인 아저씨에게 건네며 이 유명한 일본인과의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기를 건내 받은 일본인 아저씨는 (카메라도 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동 카메라의 조작이 서툴렀는 지 렌즈의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정작 담고자 했던 나와 선생의 얼굴이 뿌옇게 나왔지만 그 대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또렷이 담겼다.


내가 살던 후쿠오카시의 오하시라는 동네에는 ‘쿠로가와’(黑川)라고 하는 오래된 장어구이집이 있다. 이 가게 입구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 데 그 안에 오자와 세이지의 사인과 그가 이 가게의 종업원들과 함께 찍은 빛 바랜 사진이 한 장이 들어있다. 나는 이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그 액자 앞에 잠시 멈추어 그 시절을 떠올린다. 텅 빈 강당에서 나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던 케이코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나는 가난했던 유학 생활을 접고 오자와 세이지보다 먼저 보스턴을 떠났다.

image from Ozawa Seiji art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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