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진화의 결과

대화/49세/일요일/테라로사

by 박종호

나는 말이야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인 것 같아.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데 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외로움을 느꼈지만 그 외로움을 다른 감정들로 혹은 자극들로 쉽게 덥어 버렸던 것 같아.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점점 더 불편해지는 것을 느껴. 나한테 왜 자꾸 쓸데없이 술을 끊느냐고 그랬잖아? 나도 100일씩 술을 끊는 것은 여러 번 했어도 매번 쉽지 않아. 그런데 술을 안 마시기로 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안 만나게 되거든. 처음에는 내가 술을 안 마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피한다고 생각했는 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반대였던 것 같아.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술을 끊은 것이 아닐까? 술을 핑계로 사람들을 피한 거지. 정말이지 그렇게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왜 이렇게 변해가는지 알 수가 없어. 호르몬 변화? 꽤나 과학적인 해석이네. 그런데 그렇다면 나이가 중년에 치달은 아저씨들이 모두 나처럼 자발적인 비사교적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 내가 보기엔 아저씨들은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동류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어떻게든 무슨 무슨 모임을 조직하여 한 번이라도 더 만나려 하는 것 같은데. 젊었을 때는 혼자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자 같다가 사냥 능력이 떨어지니 뭉쳐서 사냥을 하는 늑대가 된 걸까. 중년이란 지나온 시간이 허무해지는 시기이니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얻기 때문일 수도 있어. 이들도 나처럼 별 볼일 없구나라는 안도감? 그런 안도감이라도 얻으려면 사람들을 만나야지 왜 그렇게 혼자서 별난 척을 하느냐고? 아, 그렇긴 그러네. 어쩌면 난 정말 별나고 싶은지도 몰라. 남들보다 더 잘나고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저 남들과 다르게만이라도 되고 싶을지도 모르지. 어떻게든 다르지라도 않으면 남들이 이야기하는 이런저런 규정들 속에 그저 매몰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 나도 알아. 난 역시 피곤한 타입이야. 머릿속에 괜한 기준들을 세워 놓고 그 기준들을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하는 타입이지. 나도 알지 이런 것은 괜한 강박이야. 그리고 어쩌면 더 큰 열등감일지도 몰라. 열등감은 말이야, 일종의 인정 중독이야. 자의식이 강한 인간들은 남들의 인정보다 자기 스스로의 인정에 더 목말라하는 거지. 자학적이라고? 하하 날카로운 지적이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외로움 하고 통해있지. 그리고 외로움이란 실제로 신체적인 고통이라는 거, 들어봤어? 원시시대 때부터 인간은 무리에 속해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고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진화로 인간은 무리에서 벗어나 있는 외로움을 고통으로 느끼게 되었데. 단순한 심리적인 고통이 아니고 육체적인 고통. 무리에 아부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종족의 형벌 같은 거지. 진화의 결과가 고통이라니 웃기지 않아? 인정 욕구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에게 우월하거나 쓸모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무리에서 버림받을 확률이 높아지거든. 평소에야 그저 단체 사냥의 동조자로, 혹은 미래의 어느 순간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무리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지거나 위험한 순간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동족에게 잡아 먹히거나, 아니면 맹수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끌기 위한 먹이로 던져지거나. 그러니까 인정 욕구, 외로움은 인간종이 생존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야. 단순히 마음의 욕구와 고통으로는 유의미한 행동의 변화를 신체적인 허기와 통증으로 진화한 거야. 이야기가 좀 어려웠나?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모르지 뭐. 허기와 통증을 느끼고 있는 데 막상 그것을 어떻게 없애고 채워야 할지 모르겠어. 일단 닥치는 대로 술도 좀 마시고 사람들도 만나라고? 맞는 말인데 말이야. 바다에 표류하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 들어 봤어? 바닷물을 마셨다가는 점점 더 큰 갈증이 몰려오고 그러다가 심한 탈수로 죽게 되는 거지. 너무 심각했나? 암튼 그렇다고. 시간이 좀 지나면 이런 고민들도 지나가겠지 아니면 익숙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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