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포비가 있는 청주로 내려갔다. 포비는 그녀의 엄마와 함께 사는 강아지이다. 얼마 전 그녀는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포비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이제는 서 있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다고. 포비는 작년부터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14살 포비는 점점 세상과 멀어져 가고 있다.
포비는 그녀가 영국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5학년 때, 외삼촌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강아지이다. 그녀는 올해 스믈하고 다섯이 되었다. 포비는 그녀 인생의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사춘기를 보았고, 그녀가 학교에서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홀로 사는 엄마에게 철 없이 화풀이를 하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포비가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비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의 무언가를 나의 일부로 만들려는 욕망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온전함이 상처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이런 사랑이란 한 없이 여린 대상을 향한다. 모성애와 같은 것이다.
어쩌면 이번 방문이 그녀가 포비를 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너무나 슬프지만 이런 슬픔을 같은 무게로 지게 될 엄마를 생각하면 더 슬펐다. 그녀의 엄마도 그러할 것이다. 슬픔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그녀는 이미 포비와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소녀가 아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어릴 적부터 첩첩이 쌓인 냄새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냄새는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이다. 엄마의 냄새처럼 포비의 냄새는 그녀의 어린 시절이 한꺼번에 응축하고 있고, 포비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한다.
오늘 밤 그녀는 포비의 옆에서 포비의 냄새를 한껏 맡으며 잠들기로 했다. 포비의 옆에는 엄마가 누웠다. 엄마의 냄새와 포비의 냄새는 뒤섞여 그녀는 포비를 처음으로 만났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아이가 된다. 포비의 숨소리를 들으며 모녀는 잠이 든다.
포비는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끄응끄응 뭐라 말을 하며 앞발로 바닥을 서걱서걱 긁는다. 매일 아침 벌어지는 포비의 투정. 포비는 아이와 놀고 싶다. 더 잠을 자고 싶은 아이는 몸을 돌려 누운다. 포비는 질세라 옆으로 누운 그녀의 등에 양발을 올리고 무게를 실어 밀어 본다. 그녀가 꼼짝도 않자 포비는 다시 끄응끄응 소리를 낸다.
참다 못한 포비가 그녀의 몸 위을 폴짝폴짝 넘어다녔다. 잠자는 척을 하고 있던 그녀는 이제는 어쩔수 없다는 듯 눈을 뜨고 포비를 본다. 어머, 포비야 다리가 다 나았네? 포비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그녀와 눈을 맞추며 꼬리를 힘차게 흔든다. 포비, 산책 갈까? 포비는 언제나 그랬듯 컹컹 두 번 짧게 짖고는 오른쪽으로 한 바퀴 다시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빠르게 돌았다.
산책을 간다는 말에 너무나 기뻐 흥분한 포비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래 그래 가자. 잠깐만 기다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꿈에서 그녀는 깼다. 옆에는 포비가 잔뜩 힘이 들어간 쇠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다. 포비, 산책은..? 그녀는 포비를 흔들어 깨우려다 이내 방금까지 꿈을 꾸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아주 가만히 포비의 등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포비가 숨을 쉴 때마다 등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앙상하게 남은 가죽과 뼈가 손 바닥에 느껴졌다. 그녀는 갑자기 슬퍼져 눈물이 나왔다. 흐느끼는 소리가 엄마를 깨울까봐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포비와 함께할 수 있는 이 짧은 시간이 그저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녀는 포비를 위해, 그리고 엄마를 위해 슬픔을 감추고, 아니 미루고 이 시간을 행복하고 즐거웠던 포비와의 추억으로 만들자고 마음 먹었다.
아침이 되었다. 포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누워서 약한 숨을 쉬고 있다. 그녀는 포비의 옆에 앉아 포비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포비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포비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포비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 그녀도 포비도 아이였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를 생각하니 포비는 정말 행복했다. 예전처럼 꼬리를 힘차게 흔들지는 못했지만. 마치 그녀와 포비, 엄마가 함께 살았던 어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킁킁, 어릴 적 그녀에게서 나던 냄새가 났다. 그녀가 어릴 적, 그녀도 포비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포비의 냄새를 맡고는 했다. 강아지로서 강아지 흉내를 내는 이 아이가 얼마나 웃겼던지.
포비는 지금 그 어린 아이, 평생의 친구이자 유일한 단짝이던 그 아이와 폴짝폴짝 뛰어 노는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