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어간 직장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였다. 부러워할만한 회사라는 것은 나의 부모님이 친구들을 만나 자식 자랑하기 좋은 회사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기 위한 첫 번째이자 모든 조건은 높은 임금이다. 회사는 확실히 높은 임금과 탄탄한 복지를 보장했고 덤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가져다주었다.
회사의 생활은 매우 고됬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혹은 다음 새벽까지 일했다.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 하긴 그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은 근무 시간이 조금 짧았다. 돈의 값을 한다지만 나는 없거나 아직 돈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나이었다.
출근을 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업무가 나에게 맞지 않음을 알아챘다. 그 당시에는 MBTI 검사가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을 때였지만, 나는 나의 부적응을 타계하려 MBTI검사와 적성검사를 했다. 역시 직무는 나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부서 이동과 이직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3년을 그렇게 나에게 맞지 않는 직장을 다녔다. 덕분에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자랑할 시간은 조금 연장되었다.
사직서를 낸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만류했다. 회사란 게 다 그런 거다, 조금 더 참아봐라, 그만한 데가 어디에 있냐며.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도망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던 직장이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도 내가 적성도 능력도 애착도 모두 떨어지는 직원이었다.
나는 첫 직장을 나와 또 한 차례, 이보다는 훨씬 긴 직장 생활을 마치고 나의 사업을 시작했다. 두 번의 사직서를 썼다. 한 번은 도망이었고 한 번은 도전이었다.
엊그제 일 년 반 동안 함께 해 온 직원이 사직서를 내었다. 참 잘 지내오던 직원이다. 왜냐고 물으니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흔한 답이다. 나는 대면대면 응원한다고 말했다. 돌아보니 나의 반응은 너무 성의가 없었다. 조금 더 놀라고, 조금 더 당황하고, 그러지 말라고 말려보았어야 했다.
내일은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
그것이 그에게 도망이든 도전이든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응원함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