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치킨

by 박종호

며칠 전부터 치킨이 먹고 싶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치킨을 한 마리 시키면 그중에 상당 부분을 버려야 한다. 다른 음식들은 소분하여 냉동하거나 다음 날 반찬으로 먹을 수 있겠지만 튀긴 음식인 치킨은 그렇지 못하다. 냉장고에 넣으면 바삭하던 튀김옷이 눅눅해지고 고기는 딱딱해져 버린다.


혼자 산다고 하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비사회적인 인간이라고 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할 리 없다. 하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1인분의 문화에 야박하다. 어떤 음식들은 반드시 2인 이상이 모여야 먹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테이블에서 조리하는 냄비요리(샤부샤부, 찌개, 전골 등), 굽는 고기류(돼지, 소, 양), 쟁반짜장(분명히 보통 짜장, 간짜장과도 맛이 다르다), 탕수육과 그 친구들(짜장면 세트에 딸려 나오는 탕수육은 요리로 나오는 탕수육과 식감이 다르다), 피자(어떻게 한 판을 혼자 먹으란 말인가), 알고 보면 별로 깎아주지도 않는 커플 메뉴 등등.


1인 식단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식당들의 이런 은근하고 단호한 차별은 혼식을 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당장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지만, 사람들은 왠지 혼식을 하는 사람들을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친구와 어울리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미덕으로 배우며 살았기 때문이다.


퇴근 전부터 치킨이 먹고 싶었다. 퇴근하는 순간에는 오늘은 꼭 치킨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배달을 시키는 것이다. 집이 지척이니 사무실을 나가며 배달을 시키면 집에 가서 샤워를 끝내고 나올 때 즈음에 현관에 나의 별식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 경우의 문제는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과 음식쓰레기이다. 닭뼈는 음식쓰레기가 아니고 일반쓰레기롤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살이 붙은 닭뼈는 어느 쪽으로 버려야 하는가? 설마 뼈와 살을 발라서 버리라는 말은 아니겠지?


두 번째 선택지는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서 먹을 만큼 먹고 깔끔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번거롭게 쓰레기가 생기지 않고 절인 무를 마음껏(눈치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눈치이다. 보통 치맥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여럿이 와서 맥주를 함께 마신다. 치킨 한 마리를 먹는 동안 맥주는 두어 잔을 마시니 실은 가게에서는 치킨보다 맥주가 더 많이 남는 장사다. 네 명이 앉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맥주도 시키지 않고 물이나 콜라 하나로 천천히 치킨 살을 뜯는 손님이란 가게 입장에서 참 별로일 수밖에 없다. 손님이 많아 문 밖에 대기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더욱 가시 방석이다.


나는 귀찮음보다 뻔뻔함을 택했다. 근처 치킨집의 가장 아늑해 보이는 자리에 앉아 테이블에 붙은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다행히 혼식 시대의 트렌드가 반영되었는지 치킨의 소자 메뉴가 새로 나와있다. 나는 허니후라이드 스몰 사이즈를 시키고는 물을 가지러 일어섰다. 먹고 난 뼈를 담을 통과 절인 무를 들고 오던 가게 사장은 몇 분이세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혼자요.라고 조금 힘을 주어 대답했다. 가게 사장의 질문이 퉁명스럽게 들렸던 것도, 내가 지나치게 힘을 주어 혼자요라고 대답했던 것도 (그저 느낌일 뿐이겠지만) 역시 혼치킨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가게의 절반은 서른 명 정도의 중년 남녀가 단체로 들어왔다. 서로의 호칭을 보건대 한 대학교의 교수들 모임인 것 같다. 나는 치킨을 먹으며 소설책을 읽었다.(<리틀라이프>) 아직 이른 저녁이라서인지 빈자리가 서너 테이블 남아 있었다.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흘끔흘끔 남아 있는 테이블 개수를 확인하였지만 겉으로는 테가 나지 않게 아주 여유롭게 치킨을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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