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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들기를 강요하는 사회

by 박종호

지난 주말 부모님을 모시고 서촌에 들렀다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택시를 타게 되었다. 빨간 모자를 쓴 고령의 기사가 내가 육군 대령 출신이오, 평생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는 데 나라꼴이 이게 뭡니까?라고 문맥도 없고 두서도 없는 혼잣말을 했다. 나는 기사분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서 아, 네라고 대답인 듯 아니면 나 또한 혼잣말인 듯한 말을 했다.


오늘 아침은 안국동에서 일산의 킨텍스까지 긴 거리를 택시를 탔다. 칠십 대의 기사는 미국 대통령의 욕으로 포문을 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 온 세상을 죄다 시끄럽게 만들고 있어. 내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어떻게 대답을 할 줄 몰라, 난처해하고 있는 사이 그는 원래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그놈들을 싹 다 잡아넣어야 하는 데 말이야. 조용히 창 밖을 보며 자유로를 달리고 싶었던 나는 아, 네 하고 먼 곳을 보았다.


한국은 편들기를 강요하는 사회이다. 이런 일들이 꼭 택시 안에서만, 나에게만 우연히 겹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닐 것이다. 굳이 주변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밀폐된,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왜 맞장구를 강요받아야 하는 가. 그것이 어느 쪽이든 나는 너무 난처하다.


나는 이 사회가 모든 구성원의 정치적인 의견이 모이고 자유로운 논의 끝에 운영과 그 방향이 결정되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정치적인 의견은 프라이버시로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나 아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심문당하지 않기를, 고백을 강요받지 않고, 무엇보다 편들기를 강요받지 않는 사회이기를 바란다.


제발 타인과 타인 사이의 최소한의 거리가, 서로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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