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텍스 전시장부터 서울역까지 고속열차(GTX-a)가 들어서고는 전시에 참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전시가 끝나면 킨텍스 전시장 바로 앞에 들어선 고속열차의 입구는 전시장에서 나온 사람들로 붐비지만 그래도 서울 강남역의 출퇴근 시간처럼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리는 정도는 아니다.
킨텍스 역에 도착한 전차는 바로 전 역에서 탄 승객들로 좌석이 듬성듬성 채워져 승강구에 도착한다. 스르륵 속도를 늦추며 열차가 멈추면 안전문이 열리고 드디어 열차의 문이 치익하고 열린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열차의 자리가 가득 차 있다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좌석이 절반이상 비어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은 문 앞에서 양 옆으로 더듬이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나는 직전의 열차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덕분에 가장 앞 줄이다. 앉아서 서울역까지 갈 수 있을까. 전시장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피곤한 얼굴이다. 나도 그렇다. 은근한 경쟁이 시작된다. first come, first serve. 선착순이란 지형적 위치(앞자리)와 민첩성으로 성패가 갈린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지형적 이점이 상당했다. 다행이네, 이제 서울역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갈 수 있다. 이제 내 앞에 임산부, 장애인, 혹은 현격하게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이 서 있지 않는 한 이 자리는 종점까지 나의 차지이다. 나의 것. 이 의자는 명백한 공공재이지만 내가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부터 나는 이 자리의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정당한 권리임이 명백하다.
"빨리 사진 지워."
"싫어요. 사과하면 지울 거예요"
"아니 왜 남의 얼굴을 찍는 거야, 미쳤어?"
"아니 먼저 밀었잖아요? 사과 먼저 하세요. 그러면 지울게요."
"내가 왜 사과를 해. 너 이거 초상권 침해야. 당장 지우지 않으면 경찰 부른다."
"경찰? 불러요, 불러. 내가 뭘 잘못했어요, 사람을 밀치고 자리에 앉은 건 그쪽이쟎아요."
"여보세요. 경찰이지요. 여기 킨텍스에서 서울역 가는 GTX열차인데요, 이 여자가 내 얼굴을 사진 찍고 지워달라는 데 지워주지 않아서 신고하는 거예요. 네 열차번호는.. 네 지금 막 대곡역을 떠났어요."
젊은 여인과 그녀를 밀친 중년의 여인은 경찰이 출동하기로 한 역에서 내리려 열차 문 앞에 섰다.
이제 중년 여인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젊은 여자도 더 이상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미친년, 넌 이제 큰 일났어"
"니가 먼저 사람을 밀고 자리에 앉은 건 왜 이야기 안 해? 왜 사람들 있는 데서 이야기하니까 창피하냐? 그렇게 자리에 앉고 싶었어?"
"그래 앉고 싶었다 왜?"
사건을 다시 정리하면, 큰 언니 뻘 되는 여자가 막내 뻘 되는 여자를 밀치고 자리를 빼앗는다. 화가 난 막내뻘은 앉아있는 언니뻘의 얼굴을 사진 찍는다. 무엇에 쓰려했을까. 자기가 방금 한 짓이 켕기는 언니뻘은 막내뻘에게 사진을 지우라 요구하고 막내뻘은 사과가 먼저라며 거부한다. 언니뻘은 사과할 생각은 없는 듯 더 강해 보이기 위해 욕을 섞어 말하고 그래도 안 통하자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제 출동한 경찰을 만나러 연신내역에 내리는 두 여자는 막말을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지금까지 이 사태를 지켜본 열차 칸의 승객들에게 이 자야 말로 정말 나쁜 인간이다라고 강변하는 듯이.
평화로이 졸고 싶었던 시간에 두 여인의 싸움 구경에 온 신경이 곤두셨다. 재미있기보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화였다. 그깟 전철 자리 하나가 무어라고 이리들 심하게 싸우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명분과 자존심, 그리고 창피함의 싸움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 사진을 가지고 사흘 밤낮으로 혼자 욕을 하며 화풀이를 하였을 리는 없다. 이 사진을 어딘가에 올리고 자기 것이 되었어야 할 자리를 힘으로 빼앗은 무법자를 창피주려 했을 것이다. 정말 순간적으로 앉아서 가고 싶다는 욕심에 이성을 잃고 막내뻘을 밀고 자리를 차지한 언니뻘은 사과하는 것이, 순서와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창피하여 제 때 사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과하면 자기가 전철에 타면 빈자리에 가방을 던진다는 K-아줌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자제의 순간과 사과의 순간을 놓쳐버린 언니뻘은 이제 막내뻘을 윽박질러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 이외에 달리 사태를 수습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다. 창피함을 피하기 위해. 사태가 일파만파 커져가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차 안에서 창피를 당하는 상황만은 면해야 하니까. 사과를 하지 않던 언니뻘이 막내뻘에게 사진을 찍힌 것은 길가에 똥 피하려다 똥통에 빠진 격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그녀에게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무단 촬영이란 그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보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위법행위이다. 그녀는 노련하게 승기를 쥐었고 분에 찬 막내뻘은 자신이 궁지에 빠진 줄도 모른 채 언니뻘이 불러 놓은 경창들에게 걸어갔다.
이 두 여인은 아주 높은 확률로 같은 전시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동종 업계의 종사자라는 뜻이다. 업계는 좁아 한 두 다리만 건너도 얽히고설킨다.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동등하기보다는 서로가 위와 아래, 바이어와 서플라이어, 갑과 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두 사람은 내일도 오늘처럼 각각의 부스에서 하루를 보내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비슷한 시간에 같은 열차를 타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다시 같은 열차를 타게 될 확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치어 남은 하루를 불쾌한 감정으로 망쳐버릴까 봐 하루 종일 조마조마할 것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이 둘이 전시장에서, 그것도 협력회사이거나 갑을의 관계로 만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일 테니까. 하지만 이런 경우를 위하여 선조들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을 만들어 두셨다. 이 두 사람이 전시장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사이로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창피함이란 사회성을 띈 감정이다. 한마디로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 혹은 들켜서 숨고 싶은 마음이다. 창피함은 사회적인 비난을 두려워하여 사회적인 합의를 따르게 하고 타인에게 보여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도록 한다. 수많은 악행과 이기적인 행동이 이 염치로 제어된다. 반면 염치를 모르면 이기적인 행동이 튀어나오고 남이 보지 않으면 고민 없이 무법자가 된다.
오늘 창피함을 잃고 창피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 벌어진 하나의 소동을 보며 생각했다. 실수하였다면 창피하더라도 빨리 사과하자. 작은 창피함을 막으려 큰 창피함을 무릅쓰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말자. 무엇보다 창피할 짓을 하지 말자. 혼자 있어도 바르게 살자, 신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