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생각의 증거이다. 수많은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을 부정하는 말 한마디를 못하여 비명에 신의 곁으로 달려갔다. 진실되고 바른말만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사람은 말로 평가되고 말의 진실성이 신뢰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말의 진실성과 대비를 이루는 것은 말이 가진 효능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다고도 하고, 말 한마디가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입으로 짓는 구업이 가장 크다고 한 이유는 말로 불러들이는 화가 다른 행실의 결과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말의 힘,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항상 진실되게, 나의 생각과 똑 떨어지는 말만 하면서 천냥 빚도 갚고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가 듣기 싫은 말을 에누리 없이 말하고, 뻔한 공치례는 뻥긋도 못하는 인간은 주변에 편을 들어주는 인간이 없고 좋은 기회에 꼬투리가 잡히면 흠씬 두들겨 맞기 일쑤이다.
다행히 우리의 말이 항상 신앙고백을 하듯 양심의 시험대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대화에서 우리는 나와 상대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나의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짐 캐리가 주연한 <라이어, 라이어>에는 어느 날 생각이 말로 그대로 튀어나오게 된 주인공이 나온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나는 요즘 상대방이 들어 기분이 좋은 말, 듣기 좋은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생각을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당신이 물어보았으니 대답은 하겠습니다만 그건 명백히 당신의 잘못이오." 은근히 자기편을 들어주리라 여겼던 상대방은 맥이 탁 풀리며 마음 한켠으로는 '그래 어디 두고 보자' 할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금언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지만, 진실을 가르는 공방이 아니라면 나는 옳은 말과 듣기 좋은 말 중에서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택하고 싶다. 거짓말로 아부를 한다고 말하여도 하는 수 없다. 옳은 말, 맞는 말, 내 생각과 반드시 일치하는 말을 하는 것이 상대방의 기분보다 중요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반성한다. 나는 내가 옳다,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따지고 싸우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었는가? 고슴도치처럼 배타적인 태도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멀어지게 하였는가? 내가 싸우고 지켜내려 했던 생각들이 대단히 옳고 중하였다면 왜 지금은 떠오르지조차 않는 것일까.
오랜 시간 내가 듣기 좋은 말, 내 생각만 말하고 살았다. 이제부터는 남이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살아야겠다. 정히 상대방의 생각을 맞장구칠 수 없다면 그저 아무것도 모른 척, 응응하고 가만히 들어주기라도 하려 한다. 조금 더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인간이 되어야겠다.